제주 공시가 산정과정 주먹구구
올해 제주도 공시가격 산정 시 표준주택으로 선정된 집. 1978년 지어진 폐가인데도 올해 공시가격이 6240만 원으로 지난해보다 13% 넘게 올랐다. 제주도 공시가격검증센터 제공
한국부동산원이 제주도에서 40년 넘은 폐가의 공시가격을 산정하면서 지은 지 4년이 채 안 된 신축 주택을 기준으로 삼는 등 집값 검증을 부실하게 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근 부동산원이 제주도 내 단독주택 공시가격의 기준으로 관리하는 ‘표준 단독주택’ 중 상당수가 빈집 무허가건물 등 표준으로 삼을 수 없는 집인 것으로 드러난 데 이어 공시가 산정 과정에까지 부실이 있었다는 것이다.
○ 폐가 공시가 산정하면서 지은 지 4년 된 집값 참고
23일 제주도 산하 공시가격검증센터에 따르면 한국부동산원은 올해 제주 표준주택으로 선정한 A주택이 폐가라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하고 연면적 59m² 규모의 인근 B주택을 표준주택으로 대체했다. 하지만 B주택도 1978년 지어진 폐가였다. 그런데도 이 집의 올해 공시가격은 6240만 원으로 지난해(5510만 원)보다 13.2% 올랐다. 제주 표준주택의 평균 공시가격이 전년 대비 1.55% 하락한 것과 큰 차이를 보인 것이다.
○ 조사원 성향 따라 과세 여부 달라지기도
초고가 주택이 표준주택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제주도는 최근 공시가격 60억 원 이상의 초고가 주택이 표준주택으로 선정된 점을 비판하자 국토부는 ‘다른 단독주택 가격 산정에 활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는 국토부와 부동산원이 2019년 발간한 ‘표준주택가격 조사·산정 업무 요령’과 배치된다. 업무 요령에는 ‘개별 주택의 가격을 산정할 때 표준주택이 비교 주택으로서 활용성이 낮으면 기준성을 상실한다’고 돼 있다. 아울러 ‘표준주택은 개별 단독주택 가격 산정을 위해 선정되고, 그 역할에 부합하지 않으면 삭제돼야 한다’는 규정도 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표준주택을 선정하거나 공시가격을 책정할 때 일관성과 투명성이 떨어져 납세자들이 수긍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조사자의 전문성을 높이고 산정 근거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며 “공시가격이 미치는 영향이 광범위한 만큼 공시가를 함부로 올리거나 내리려는 시도가 없도록 조사의 중립성을 지킬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