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라도 식료품점 총기 난사사건 용의자 (트위터 갈무리) © 뉴스1
미국 서부 콜로라도주의 한 슈퍼마켓에서 22일(현지 시간)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해 경찰 1명을 포함해 10명이 숨지는 참극이 벌어졌다. 16일 남동부 조지아주 애틀란타 일대에서 연쇄 총격으로 한국계 4명을 포함해 8명이 사망한지 엿새 만이다.
CNN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 반경 콜로라도 최대도시 덴버에서 북서쪽으로 40여km 떨어진 소도시 볼더의 주택가에 있는 ‘킹 수퍼스’ 슈퍼마켓에서 한 괴한이 손님과 직원들을 향해 반자동 소총을 수십 발 발사했다. 이 총격으로 손님 등 9명과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 에릭 탈리(51)씨가 숨졌다. 탈리 씨 외에 50대 2명, 60대 3명, 20대 3명, 40대 1명 등 총 10명이 희생됐다고 현지 경찰이 23일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희생자 중 아시아계는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특수기동대(SWAT)와 헬기를 투입해 슈퍼마켓을 포위하고 대치한 끝에 용의자인 21세 남성 아흐마드 알 이사를 체포했다고 밝혔다. 그의 정확한 신원과 인종 배경 등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름을 감안할 때 무슬림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의 페이스북에는 이슬람에 관한 게시물이 여럿 올라와 있다. 자기 소개란에는 덴버 메트로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며 킥복싱을 즐긴다는 문구가 있다.
탈리 씨는 현장 인근에 있던 경찰 중 가장 먼저 도착했다가 범인 총격에 희생됐다. 자녀가 7명 있으며 맏이는 20세, 막내는 7세라고 경찰은 밝혔다. 최근에는 드론 조종사로 전직하는 걸 고려 중이었다고 유족은 전했다.
미국에서 끔찍한 총기 난사 사건이 되풀이되고 있다. 특히 볼더 등을 포함한 덴버 일대에서는 1999년 미 최악의 학내 총기 사고로 꼽히는 ‘컬럼바인고교 총기 난사’를 비롯해 대규모 희생자를 낳은 사건이 수 차례 발생했다. 1999년 4월 덴버 남쪽 리틀턴의 컬럼바인 고등학교에서 두 학생이 총기를 무차별 난사해 학생 12명과 교사 1명을 숨지게 하고 자신들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2년 7월에는 25세의 제임스 홈스가 덴버 동쪽 오로라의 한 극장에서 영화 배트맨 시리즈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보고 있던 관객에게 총을 쏴 12명이 숨지고 70명이 부상했다. 2019년에도 덴버 남쪽 하일랜즈랜치의 ‘스템(STEM) 스쿨’에서 총격범 2명이 총기를 난사해 학생 1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CNN은 16일 애틀랜타 연쇄 총격부터 이번 볼더 총기 난사까지 6일간 휴스턴, 댈러스, 필라델피아 등에서 7건의 총기 난사가 벌어졌다고 전했다. 2011년 총기 난사 사건의 생존자로 총기 규제를 지지해 온 개브리엘 기퍼즈 전 애리조나주 하원의원은 22일 “지난주에는 애틀랜타더니 오늘은 볼더”라며 “이건 정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번 참극을 계기로 총기 규제 여론도 다시 일 것으로 보인다. 척 슈머 집권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총기 폭력의 확산을 막기 위한 입법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하원은 이달 이미 강화된 총기 폭력 방지법안 2건을 통과시켰다”면서 “당장 행동이 필요하다”고 가세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트위터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사건 보고를 받았으며 계속 진행 상황을 지켜볼 것”이라고 밝혔다. 재러드 폴리스 콜로라도 주지사는 “우리는 오늘 악(evil)의 얼굴을 보았다. 슬픔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콜로라도 주민을 위해 기도한다”고 밝혔다.
미 사법당국은 애틀랜타 연쇄 총격 사건의 용의자 로버트 에런 롱(21)에게 ‘악의적 살인 및 가중 폭행’ 혐의를 적용하고 있다고 22일 밝혔다. 아시아계 사망자가 다수임에도 현재까지는 ‘증오범죄’ 혐의가 포함되지 않아 논란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