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운 문화부 차장
여기서 고종이 망국(亡國)의 원흉이냐를 따지고 싶지는 않다. 다만,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뜨거운 감자인 근현대사 이슈를 이제는 논리적으로 따져 볼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거다. 이 같은 논의에서 다양한 시각과 주장,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특히 일본 제국주의의 간섭 없이도 조선이 자주 근대화에 성공했을 수 있었겠느냐는 주제는 더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고종을 옹호하면 반일(反日), 그를 비판하면 친일(親日)이라는 이분법 시각으로는 생산적인 논의를 할 수 없다.
올해로 광복을 맞은 지 76년이 흘렀건만 여전히 우리 사회와 학계는 친일, 반일 프레임에 갇혀 있다. 정부와 여당은 6·25전쟁 이후 안정적으로 구축된 한미일 3각 안보의 틀보다 반일 프레임을 앞세우고,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친일로 몰아붙이고 있다. 이런 분위기와 맞물려 민족주의를 뛰어넘어 실증(實證)을 추구해야 할 학계마저 자칫 친일로 읽힐 수 있는 견해에 대해 자기검열을 하는 실정이다.
5년 전 기자는 강단·재야 사학자들과 함께 고조선 한군현(漢郡縣) 위치 논란이 벌어진 중국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 일대로 답사를 다녀온 적이 있다. 고조선의 역사 강역을 넓게 해석하려는 재야 사학자들에 맞서 강단 사학자들은 문헌과 고고자료를 들이댔다. 이에 논리적으로 수세에 몰린 한 재야 사학자가 현직 대학교수의 ‘출신 성분’을 운운하며 비난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가 일본 도쿄대에서 고고학 박사학위를 취득해 ‘식민사학’에 물들어 있으며, 이 때문에 고조선의 강역을 좁게 해석한다는 궤변이었다. 이제 이런 식의 유치한 친일, 반일 프레임은 폐기할 때가 되었다.
김상운 문화부 차장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