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영 강원대 총장
김헌영 총장은 대학육성의 패러다임을 ‘지(地)-학(學)’으로 바꿀 것을 제안한다. 지자체와 대학이 협력하면 대학이 지역의 성장 동력으로 나서 지역발전에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강원대 제공
대학은 예상했던 것처럼 생존의 위기에 직면했다. 2021학년도 입시에서 4년제 162개 대학이 정원의 2만6129명을 채우지 못했다. 이 미(未)충원 인원은 2005학년도 이후 최다로 전년 대비 약 2.7배 증가했다. 교육부는 2024년 대학 입학자원이 37만3470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이 예측이 현실화되면 입학정원 3000명 규모의 대학 46개교가 신입생을 한 명도 받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신입생 미충원은 13년째 계속된 등록금 동결로 인해 가뜩이나 어려운 대학에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대학의 재정 결핍은 대학교육의 질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대학의 존폐 문제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다. 대학이 없어지는 대가는 심각하다. 폐교한 한중대와 서남대 사례에서 보듯 대학이 문을 닫은 지역은 막대한 경제적, 사회적 타격을 입었다. 이제는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그동안 대학정책이 효과를 봤다면 지금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 대학은 지역 성장의 핵심
생존의 기로에 선 대학을 반전시키고 대한민국 고등교육 도약을 위해 ‘지학(地學)협력’을 대학 육성의 기본으로 삼을 것을 제안한다. 지학협력의 핵심은 지방자치단체가 대학 육성의 주체로 나서는 것이다. 지금까지 중앙정부가 해온 역할을 지방정부가 주도하자는 뜻이다. 지자체에 대학의 가치는 중앙정부보다 훨씬 크다. 지역에서 함께 생활하며 지역문제 해결에 간절한 지자체가 중앙정부보다 더 효과적이고 창의적인 대책을 낼 수 있다고 확신한다. 지자체가 대학을 활용해 지역발전정책을 펴나갈 때가 됐다.
지학협력이 구체적으로 실현되기 위한 방안으로 광역시나 도 단위의 대학협력체가 참여하는 ‘지역·대학 상생발전 투자협약제도(가칭)’를 제안한다. 이 제도는 지역의 대학들이 협력체를 구성해 지역 공통 정책과제를 도출하고 이를 지자체와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것이다.
강원도의 대부분 지역은 지역소멸 위기에 몰려있다. 춘천 원주 속초를 제외한 15개 시군 모두 인구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된다. 2018평창겨울올림픽을 계기로 대폭 개선된 교통 인프라 덕에 삶의 질이 향상되긴 했지만 이는 역으로 인구 유출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왜 사람들이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는가. 지역에 살 만한 유인책이 없어서다.
그런 의미에서 강원대와 삼척시가 추진하는 ‘도계 대학도시’는 지학협력의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도계 대학도시는 강원대가 계획하고 삼척시가 재정을 지원하는 구조다. 정부도 지난해부터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 관심을 갖고 있다.
● ‘도계 대학도시’와 배리어 프리 시티
도계 대학도시의 목표는 대학이 지역을 살리는 데 있다. 강원대 도계캠퍼스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폐광지역특별기금으로 세워졌지만 육백산 정상 부근인 해발 860m에 있어 지역발전에 거의 기여할 수 없었다. 그래서 강원대는 2017년부터 도계캠퍼스의 상당 부분을 도계 읍내로 옮겨 지역소멸을 막고 대학 역량도 올리려고 노력한다.삼척시도 도계 대학도시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또 다른 계획인 ‘배리어 프리 시티(Barrier Free City)’를 만드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배리어 프리 시티의 기반은 도계의 아름다운 풍광과 강원대 보건계열 학과의 역량이다. 여기에 강원대의 정보기술(IT) 빅데이터 자율주행 기술이 더해진다면 배리어 프리 시티가 스마트 시티로 진화할 수도 있다. 개선된 교통 인프라는 삼척과 도계 주변의 풍부한 문화적 자산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것이다. 삼척시는 2025년까지 917억 원을 들여 석탄산업 문화예술 공간과 노인요양원, 헬스케어센터 등을 조성하는데 이 또한 배리어 프리 시티의 훌륭한 인프라가 될 것이다.
도계 대학도시와 베리어 프리 시티의 기반은 대학에서 나왔다. 중앙정부가 적절히 지원만 해준다면 곧 달성될 목표다. 도계의 사례가 지역소멸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
● 강원권 1도 1국립대 특성화
지학협력은 대학간 협업과 통합에서 출발한다. 지학협력의 목표는 궁극적으로 대학의 역량을 강화해 지역의 산업을 발전시키는 데도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대학교육의 패러다임은 공유와 혁신이라고 강조하며 이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디지털 혁신 공유 대학사업’과 ‘지역혁신 플랫폼사업’이 그것이다. 대학간 경쟁체제에서 한 단계 나아가 대학간 협력체제를 바탕으로 한다면 이 사업들은 지역발전의 구체적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
통합대학 시도는 기초단체뿐만 아니라 광역단체가 조명하고 검토할 만하다. 대학이 처한 지리적, 산업적 특성을 활용한 전략은 강원도 내 지역불균형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대학의 춘천 원주 강릉 삼척 캠퍼스는 각각 영서와 영동, 접경지역과 폐광지역을 상징한다. 지역의 산업적 특성도 다르다. 대학이 기술 이전과 사업화에 역할을 하면 지역경제 활성화를 촉진시킬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일자리가 창출되고 창업도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다.
입학자원이 40만 명 이하로 떨어지는 2024년까지 불과 3년 남았다. 시간이 없다. 대학이 아무리 혁신해도 법과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과를 낼 수 없다. 대학 혁신이 지학협력이라는 법과 제도로 힘을 받을 수 있도록 줄탁동시(啐啄同時·알을 깨기 위해 안팎에서 힘을 모은다)의 자세로 대학 지역 중앙정부가 함께 노력할 것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