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호 한국에듀테크산업협회장
이길호 한국에듀테크산업협회장은 공공 원격수업시스템에 대한 불만과 불안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데 대해 “전문가들이 개학 전에 여러 차례 경고해왔던 일”이라며 “지금이라도 전면적으로 체계를 바꾸는 것이 교사와 학생은 물론이고 국가 전반적인 자원 활용차원에서도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EBS 강의, 유투브 콘텐츠 등 제작된 동영상을 틀어주는데 학부모들의 불만이 치솟았다. 학생들이 심지어는 강의를 틀어놓고 바깥에 나갔다와도 알지 못하는 부실강의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새 학기가 시작되자 수업 도중 접속이 수시로 끊기거나, 튕겨져 나가 다시 로그인을 못한다거나, 업로드한 영상이 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온라인 수업을 도저히 진행하기 어려울 정도여서 교육현장은 혼란에 빠졌다.
서울 송파구 J고등학교 3월 넷째주 수업지침표
지난달 조사에서는 서울시가 15억 원이나 들여 개발한 원격수업시스템 ‘뉴쌤’의 이용률이 1%도 되지 않고, 교사들은 여전히 줌이나 구글클래스룸 같은 외국 플랫폼 이용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산업발전의 경험을 보면 거의 예외 없이 정부가 직접 발을 담그는 경우보다 정부가 제도를 만들고 지원체계를 구축한 뒤 민간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북돋아줄 경우 크게 발전했다.
초중교 원격 수업 부실의 원인과 대책, 그리고 원격교육 산업 발전 방안에 대해 이길호 에듀테크산업협회장에게 들어봤다.
- 3월 초중고가 개학을 하면서 등교와 원격수업을 병행하고 있다. e학습터와 온라인클래스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아 원격수업이 파행적으로 되고 있다. 3주차에도 안정화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작년에 e학습터와 온라인클래스 고도화 사업을 했는데 이것이 오히려 독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e학습터는 기존의 시스템을 보완한 것이라 상대적으로 많이 안정화되어 있는데 반해 EBS의 온라인클래스는 기존 시스템을 보완한 것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를 새로 구축한 것으로 알고 있다.
작년 온라인개학 초기와 같은 혼란이 불가피했고,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이다. 교육용 시스템은 다른 일반 운영 시스템에 비해 더 복잡하다. 더구나 이번 EBS의 고도화사업에는 전문적 경험이 축적된 에듀테크 기업이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식의 고도화를 왜 하는지 의문이다. 시스템을 새로 구축한 것은 EBS의 과욕이 아닌가 싶다.”
“해결되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작년 수준의 안정화라면 시간이 해결할 것이다. 개학 전 예측으로는 새로 도입한 실시간 쌍방향 화상수업도구를 제외하고는 작년 수준 속도로 안정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으로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릴 것으로 보인다.
e학습터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지만 화상수업도구는 문제가 있는 듯하다. 여기에는 줌을 대안으로 붙여놓았기 때문에 그나마 큰 문제가 없는 것 같다. 사정이 이러하니 교사들도 상당수는 줌을 활용하거나 다른 민간솔루션을 활용하고 있다.
반면에 EBS는 화상수업도구의 문제 이전에 LMS(학습관리시스템) 자체의 전문성 결여로 인해 다양한 오류가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것을 개선하는 데에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본다.”
-화상수업도구가 무엇이고,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인가?
“줌과 같은 것인데, 엄밀한 의미에서 화상수업도구는 거의 없다. 화상회의시스템을 수업용으로 쓰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번 학습관리 시스템 고도화의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화상수업도구를 붙이는 것이었다. 작년에는 교사들이 동영상 강의만 올려놓거나 과제만 주는 방식의 수업이 너무 많아서 수업의 질이 떨어졌다는 지적이 많았다. 학부모들의 불만도 컸다. 그래서 실시간 비대면 수업을 늘리기 위해 화상수업도구를 도입한 것이다.
교사들 사이에서는 운영상의 문제가 폭증할 것으로 보고 반대가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기술적으로도 학습관리시스템을 운영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를 가지고 있다. 공공시스템으로는 수십만~수백만 명에 이르는 접속자를 수용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애초에 단 2개의 시스템으로 수업의 질을 보완할 수 있다는 계획 자체가 무리수라고 봤다.
현 단계에서 그나마 안정화시킬 수 있는 방안은 다양한 도구를 사용해 접속량을 분산시키는 것이다. 학생이 300만 명에 이르는 대학교의 수업이 기술적으로는 큰 무리 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이러한 분산 효과일 것이다. 이것은 화상도구의 문제만이 아니라 공공시스템을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주 쉽게 한계에 도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e학습터, 온라인클래스 이외의 민간기업의 시스템을 추가해 보완해야 된다는 것인가. 에듀테크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민간기업의 시스템을 도입을 위해 그런 방안을 주장할 수 있을 텐데 그렇게 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나. 공공학습관리시스템을 더 고도화하여 해결해야 된다는 반론도 가능하지 않은가?
“민간시스템으로 공공시스템을 보완하자는 것이 아니라 공공과 민간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유를 하자면 국정교과서 방식을 검인정교과서 방식으로 전환해서 전 사회적인 에듀테크 자원을 동원할 수 있게 시스템을 갖추자는 것이다.
이미 존재하는 자원과 기술을 안 쓸 이유가 없지 않은가? 공공시스템을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든 장기적으로든 해결방안이 아닐 뿐만 아니라 공공시스템을 민간시스템으로 대체하는 것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학습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본다.
공공학습관리시스템의 고도화는 검인정교과서는 불안하니 국정교과서를 세련되게 만들자는 것에 불과할 뿐이고, 전사회적인 에듀테크 자원을 동원해야 하는 공공의 임무를 방기하는 것이다.
작전을 수립하고, 군대를 배치하고, 보급과 지원을 확보해야하는 지휘관 역할을 교육부가 하면 된다. 나머지는 장교나 병사들에 맡기면 된다. 그게 효율적 자원이용이라고 본다. 지금은 사령관이 직접 총을 쏘는 격이다. 그러다보니 돈은 돈대로 들고 교육 현장의 불만은 가시지 않고 있다.”
-원격교육 생태계 구성을 어떻게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는가?
“이미 협회에서는 작년 온라인 개학할 때 다양한 민간자원의 동원 계획에 대해 방안을 제출했다. 민간자원을 동원할 때 문제가 될 수 있는 안정성의 문제, 정보보호, 보안의 문제, 윤리성 검증의 문제 등과 같은 것들이다. 정부는 이 문제에 집중하고 민간에서는 나머지 기술적인 문제를 책임지는 방향으로 교육생태계를 구성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교육부에서 이런 자원을 동원할 시스템을 확보하기 위해 통합 플랫폼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기술적이고 물리적인 플랫폼 구축으로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안타깝다. 이것은 기존의 공공학습 관리시스템의 변형에 불과하다.”
- 교육의 공공성 훼손, 사교육비 증가 등 교육당국이 고민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물론 있다고 본다. 첫째는 민간자원을 쓰면 유료로 돈을 지불해야 되는데, 공공에서는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한다는 논리가 있다. 그런데 공공자원이라고 무상이 아니다. 세금으로 개발하고, 운영하는 자원이다. 공공시스템을 개발하고 운영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민간자원을 유료로 쓰는 비용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의문이다. 더구나 기술의 발전, 고용효과, 창의적이고 다양한 학습도구의 발전등과 같은 효과성을 따진다면 민간자원을 유료로 쓰는 이득이 훨씬 클 것이다.
둘째는 학생정보와 같은 교육정보를 민간기업이 활용한다든가, 비정상적이거나 영리적인 운영으로 교육 공공성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것은 이미 많은 법, 제도, 기술적 방어 장치를 통해 제어가 가능하다.
셋째는 에듀테크 기업의 영세성, 기술적 취약함 등으로 인한 불안정성이다. 이것은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린 지적이다. 공공시스템을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 에듀테크의 기술적 발전은 더디게 진행될 수밖에 없고, 이것은 교육현장에서의 활용도 더디게 만들 것이다.
아직까지 우리나라 에듀테크 기업들의 역량은 상대적으로 우수하다고 본다. 하지만 이 상황이 지속되면 점점 뒤처질 것이다. 3,4년 전 만해도 일본의 에듀테크 기업들이 한국을 자신들보다 많이 앞서있다고 부러워했다. 최근 2,3년 새 일본은 우리나라를 이미 추월한 것처럼 보인다. 일본이러닝협회(EIJ)에 따르면 일본 정부와 기관에서도 앞으로도 에듀테크 분야에 대해 폭넓은 지원을 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래도 교육당국의 입장에서 시스템의 안정성 문제는 중요하지 않나. 그런 점에서 신뢰할 수 있는 기관이 직접 운영하는 게 타당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나?
”두 가지 사례를 들고 싶다. 첫째, 이미 대학교에서 운영되는 시스템은 민간의 것이거나 대학이 직접 운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300만 명의 학생이 쓰고 있다. 이런 구조가 훨씬 안정적이지 않은가? 이것은 시스템의 운영에서 크게 문제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다양하게 발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것이다.
둘째, 학원이나 교육서비스업체에서도 실시간 화상수업을 폭넓게 하고 있다. 어쩌면 학교에서 수행되는 규모만큼의 실시간 원격수업이 학원에서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이런 발 빠른 대응을 통해 학교가 셧다운된 상황에서 학원생 수가 늘었다는 학원이 많다. 학원이나 민간업체가 자기들에게 맞는 다양하고 편리한 도구를 쓸 수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은 시사점이 크다.“
:용어설명: 에듀테크= 교육(Education)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 교육에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해 교육 서비스를 개선하거나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는 데 기술을 의미한다. 쌍방향 원격교육이 대표적이다. 관련 산업이 에듀테크 산업이다. 에듀테크 산업의 세계 시장규모는 2018년 1530억 달러(약 1600조 원)에서 2025년 3420억 달러(약3700조 원)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예측될 만큼 잠재력이 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광현 kk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