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K 화면 캡처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토(일본의 옛 이름)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
24일 오후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시 한신고시엔구장. 한국계 민족학교 교토국제고교 야구부 선수들이 전광판을 바라보며 교가를 목청껏 불렀다. 전광판 위엔 교기가 게양돼 있었다. 선발고교야구대회(봄 고시엔)에 첫 출전한 이 학교 선수들은 이날 첫 경기를 이기고 승리 팀 자격으로 그라운드에 도열해 교가를 제창했다. 관중석에서 응원하던 재학생과 졸업생들도 따라 불렀다. 학부모들은 교가가 끝날 때까지 박수를 보냈다.
일본 야구의 성지로 불리는 고시엔구장에서 이날만 한국어로 된 교가가 2번 울려퍼졌다. 이들이 교가를 부르는 장면은 일본 공영방송 NHK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됐다. 이 대회는 1회 말이 끝나면 초 공격 팀, 2회 말이 끝나면 말 공격 팀 교가가 방송을 통해 전국에 울려퍼진다. 그리고 승리 팀에는 경기 후 한 번 더 교가를 부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이긴 팀이 교가를 부를 때 패한 팀 교기는 내린다. 이날 교토국제고교는 역시 첫 출전한 미야기현 시바타고교를 연장 승부 끝에 5-4로 눌렀다.
이날 NHK는 교토국제고 교가를 내보면서 한글 자막 옆에 괄호로 일본어 번역본을 함께 올렸는데 ‘동해(東海)’가 아니라 ‘동쪽의 바다(東の海)’라고 표기했다. 또 ‘일본어 번역은 학교로부터 제출받았다’는 설명도 달았다. 하지만 박경수 교토국제고 교장은 “한국어로 녹음한 CD를 대회 주최 측에 제출했을 뿐 번역까지 해서 주지는 않았다”고 했다. 주최 측이 우익들의 반발을 우려해 고유명사인 동해를 ‘동쪽의 바다’라고 바꿔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교토국제고가 0 대 2로 뒤지던 7회 3-2로 역전에 성공하자 응원석에서는 “와~”하는 함성과 함께 “그럴 줄 알았어”, “역시”하는 한국어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붉은색 점퍼를 맞춰 입은 응원단은 응원 고깔을 두드리며 선수들에게 힘을 불어넣었다. 교토국제고 응원석엔 약 900명이 모였다. 1학년이 아직 입학 전이라 재학생은 50여 명 정도였다. 한일 양국 정부의 인가를 받은 교토국제고는 정원이 131명(일본인 학생 93명, 한국 국적 학생 37명)으로 32개 출전 고교 중 가장 적다. 하지만 오사카에 있는 한국계 민족학교인 금강학교(37명)와 건국학교(9명) 재학생들이 찾아와 함께 붉은 점퍼를 입었다. 일본에 4개뿐인 한국학교 중 간사이 지역 3개 학교가 연합응원을 벌인 것이다. 재일동포 사회 중심단체인 재일본대한민국민단에서도 100명 넘게 경기장을 찾았다. 오사카 총영사관 관계자들도 응원에 힘을 보탰다. 교토국제고 인근의 편의점에는 고시엔 출전 축하 문구가 내걸리는 등 지역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교토의 택시기사들 사이에서도 이 학교의 고시엔 출전이 화제다.
교토국제고의 고마키 노리쓰구(小牧憲繼·38) 감독은 승리 후 NHK와의 인터뷰에서 살짝 울먹이며 “졸업생들이 경기장에 와 매우 열심히 응원해줬는데 경기 도중에도 그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교토국제고는 창단 첫해인 1999년에 첫 출전한 지역대회에서 교토세이쇼(京都成章) 고교에 0-34의 대패를 당했었는데 고마키 감독이 당시 이 학교 1학년 선수였다. 박 교장은 “고시엔 첫 출전으로 역사를 새로 썼고, 첫 경기를 이기면서 또다시 새 역사를 썼다. 감개무량하다”며 기뻐했다. 앞서 박 교장은 대회 개막을 앞두고 목표를 얘기하면서 “1승만 올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2회전에 오른 교토국제고의 한국어 교가는 27일 다시 한번 더 전파를 타고 일본 전역에 울려퍼진다. 2회전 상대 팀은 ‘도카이다이스가오(東海大菅生)’ 고교로 공교롭게도 학교 이름에 ‘동해’라는 명칭이 들어 있다. 27일 경기에도 금강학교와 건국학교 학생들이 함께 응원할 예정이다.
효고, 교토=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교토=김범석 특파원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