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종합 반도체기업 인텔이 미국 내에 반도체 공장을 지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에 뛰어들기로 했다. 파운드리 업계 1, 2위인 대만의 TSMC와 삼성전자 고객사들을 적극 유치한다는 방침도 밝혔다. 미중 신(新)냉전으로 촉발된 글로벌 공급망의 변화가 한국의 반도체 산업을 뒤흔들기 시작한 것이다.
인텔은 어제 200억 달러(약 22조7000억 원)를 투입해 미국 애리조나에 파운드리 공장 2곳을 짓는 계획을 발표했다. PC, 서버의 중앙처리장치(CPU) 설계와 생산이 주력인 인텔이 앞으로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퀄컴 애플의 주문을 받아 반도체를 대신 제작해 준다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삼성전자와 TSMC의 주요 고객이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는 “아시아에 집중된 반도체 제조시설을 미국과 유럽에서 확보할 것”이라고 했다.
인텔의 결정에는 경쟁업체 AMD의 추격 등 다른 이유도 있지만 조 바이든 정부의 정책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바이든 대통령은 2월 말 반도체 등 4개 핵심 분야 글로벌 공급망을 점검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고, 미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업에 막대한 지원을 약속했다.
한국의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D램, 낸드플래시에서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갖췄다. 하지만 주문형 반도체, 반도체 생산장비 등 다른 분야에선 미국 대만 일본에 여전히 열세다. 일본 차량용 반도체 공장에 불이 나자 현대차·기아와 정부 관계자가 대만으로 달려가 물량을 더 달라고 졸라야 하는 게 현실이다. 세계 2위인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점유율도 1위 TSMC의 3분의 1 수준일 뿐이다.
각국 정부가 국가의 미래전략 차원에서 반도체산업을 키우고 자국 우선주의의 벽을 세우고 있는데 한국은 투자, 기술개발, 인재육성 등을 대표 기업의 ‘개인기’에만 의존하고 있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정부와 기업이 ‘반도체 슈퍼 사이클’의 단꿈에 빠져 있다간 머지않아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