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 산업1부 차장
최근 국내 대기업인 A사는 2050년까지 100%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는 ‘RE100’ 선언을 미뤘다. RE100 선언은 애플, 구글 등 글로벌 기업들이 줄줄이 동참을 선언한 대표적인 탄소 제로 운동의 일환이다.
A사도 이 같은 글로벌 흐름을 파악하고 3, 4년을 앞서 준비했다. 하지만 내부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혹여나 불가피한 상황으로 약속을 어기면 여론만 나빠질 수 있다는 우려와, 기업 성장을 저해하고 고객사가 불안해할 수 있다는 점이 A사를 망설이게 했다.
착한 기업이 되기 위해 사회공헌 비용을 많이 지출한 B기업도 최근 당황스러운 일을 겪었다고 한다. 젊은 직원들을 중심으로 “정작 직원들에겐 보상이 짜다”는 반발에 직면한 것이다. 한 대기업 고위 관계자는 “ESG 경영을 단순히 사회공헌 활동이라고 보고 내부 소통이나 기준 없이 기여만 늘린다면 또 다른 갈등을 부르는 딜레마를 경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애초에 왜 기업마다 ‘착하게 살자’를 일단 외쳐야 하는 상황이 됐을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양극화 속에 기존 자본주의에 대한 반발이 커진 탓이 크다. 2019년 미국을 대표하는 경제단체인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RT)은 기업의 목적을 “주주의 이익 극대화가 아닌 임직원, 협력사, 지역사회 등 ‘이해관계자의 공익’”이라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이런 분위기에 불을 붙였다. 경영진도 투자자도 우리 사회에 재난과 재해가 닥치면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후변화도 현실이 되는 중이다. 초콜릿 회사는 아프리카 기온 상승으로 10년, 20년 후에도 초콜릿 대량 생산이 가능할까 걱정이고,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 텍사스 한파로 수천억 원씩 피해를 보고 있다. 착해지는 게 50년 후에도 살아남는 기업이 되는 길이 된 것이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도 ‘착한 기업 되기’에 딜레마를 겪는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착한 자본주의의 전도사로 유명한 마크 베니오프 세일스포스 창업자는 지난해 최대 실적을 내고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승리”라고 자신했지만 다음 날 직원 1000명 해고를 발표했다. 미국 BRT 공동성명에 참여한 상당수 기업의 직원들은 코로나19 와중에 해고됐지만, 주주들은 자산가치 상승과 배당 이익을 누렸다.
김현수 산업1부 차장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