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지방엔 풀들이 푸른 실처럼 가늘겠지만
이곳 진 지방 뽕나무는 초록가지를 낮게 드리웠네요.
당신이 간절하게 집 생각하실 때 저 역시 애간장이 다 녹아나요.
(燕草如碧絲, 秦桑低綠枝. 當君懷歸日, 是妾斷腸時. 春風不相識, 何事入羅위)
―‘봄날의 그리움(春思)’ 이백(李白·701∼762)
남편을 향한 아내의 절절한 연가다. 봄이 무르익으면서 이곳 진 지방은 뽕나무 가지가 늘어질 만큼 잎이 무성하다. 하지만 남편이 있는 북녘 땅 연 지방 풀들은 이제 겨우 실처럼 가느다랗게 돋아났으리. 그만큼 춥고 척박하고 그래서 더 삶이 고달플 남편의 안쓰러운 모습이 아른거린다. 그 어떤 다정한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두 사람 간의 아득한 거리를 좁혀줄 묘약은 바로 텔레파시다. 당신이 간절하게 귀향을 꿈꾸는 그 순간이 바로 내가 그리움으로 애간장을 태우는 시각이라고 아내는 스스로를 다잡는다. 이 끈끈한 연대감을 재확인하며 그는 남편의 부재를 감내한다. 한데 홀로 된 적막감을 일깨우기라도 하듯 비단 휘장 안으로 살랑살랑 봄바람이 집적대고 들어온다. 우린 서로 모르는 사이라 애써 부정하는 과장된 변명이 애교처럼 귀엽다고나 할까. 낯선 사내에게 물 한 바가지 건넸던 우물가 여인도 그랬다. ‘평양성에 해 안 뜬대두 난 모르오. 웃은 죄밖에’(김동환 ‘웃은 죄’) 두 여인의 순박함이 어금버금하다.
음주와 신선을 노래했던 호탕한 시풍과 달리 이백이 이번에는 한 여인에게 감정이입을 시도했다. 이를 대언체(代言體) 시라 하는데 대개 여성, 농민, 병사 등의 입장을 대변했다. 약자를 배려한 측면이 있는 반면 시적 대상을 희생과 인내의 화신처럼 여기는 남성 우월의식을 드러냈다는 비판도 따른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