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상 단편 애니 후보 ‘오페라’
꼭대기엔 왕좌, 밑바닥선 전쟁… 긴밀히 연결된 칸마다 인간상 반복
픽사 출신 에릭 오 감독 인터뷰
“다양한 얼굴색 흰색으로 칠한 장면, 다르단 이유로 벌어지는 탄압 표현”

에릭 오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오페라’는 피라미드로 압축된 세계에 인류의 역사를 담았다. 무지개색의 다양한 얼굴색이 흰색으로 칠해지는 장면에서는 다양성이 무시되는 차별을 표현했다. 비스츠앤네이티브스어라이크 제공

8분 44초 분량의 단편 애니메이션 ‘오페라’는 피라미드의 24개 칸 안에 결혼과 출산, 경제활동 같은 일상부터 테러, 인종차별, 재해, 전쟁 등 반복된 인류의 비극도 담았다. 한국계 미국인 에릭 오(오수형·37·사진) 감독은 이 작품으로 올해(93회)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 후보에 아시아계 감독으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수상 시 아시아계 감독으론 세 번째다. 미국에 있는 오 감독을 22일 화상으로 만났다.
얼굴이 흰색으로 칠해진 이들은 아래 칸으로 이동해 모두 같은 교육을 받는다. 피라미드의 상단에 위치한 권력자에게 많은 이들이 절을 하고 음식을 바치는 장면도 펼쳐진다. 비스츠앤네이티브스어라이크 제공
대자연을 상징하는 거대한 고래는 인간들에게 잡아먹히기도, 반대로 이들을 잡아먹기도 하며 인간의 자연 파괴, 그에 대한 자연의 반격을 표현했다. 비스츠앤네이티브스어라이크 제공
오페라는 볼수록 새롭다. 반복해서 보면 놓쳤던 인물들의 움직임이 포착되고, 각기 따로 노는 것 같았던 24개 칸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음을 알게 된다. 오 감독은 벽에 화면을 영사해 반복적으로 작품을 상영하는 방식의 전시를 계획 중이다.
“사회 시스템이 그렇듯 피라미드 안 모든 공간이 상하, 좌우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아이가 나르는 음식이 꼭대기의 왕까지 전달되는 식이죠.상하는 계급을 의미하고, 좌우는 삶과 죽음, 이성과 감성, 좌파와 우파 등 상충되는 개념을 담았습니다.”
24칸의 인간 군상 중에서도 오 감독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장면은 빨주노초파남보로 다양한 인간들의 얼굴색을 누군가 흰색으로 칠해 버리는 장면이다.
그의 차기작은 1월 선댄스영화제에 초청된 가상현실(VR) 애니메이션 ‘나무(NAMOO)’다. 아카데미상 6개 부문 후보에 오른 ‘미나리’처럼 한국어를 그대로 따 온 제목이다. 10년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로부터 영감을 받아 한 인간의 삶의 여정을 담은 자전적 이야기다.
“관객이 그 세계 안으로 들어가 캐릭터가 뛰어다니는 걸 보고, 비가 내리고 눈이 오는 걸 맞으며 체험하는 애니메이션입니다. 사람들이 에릭 오를 떠올렸을 때 틀을 깨는 시도를 하는 감독으로 그려지고 싶습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