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열 정치부 차장
그래서인지 정치권에선 안 후보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한 얘기가 매일같이 나온다. 단일 후보 결정 당일 안 후보의 기자회견장에 오 후보가 찾아가려 하자 거절한 것이나, 안 후보가 국민의힘과의 합당 조건을 이것저것 제시한 것도 회자됐다. 첫 합동유세장에선 다들 붉은색 계통의 점퍼를 입고 나와 원고 없이 연설을 하는데, 안 후보 혼자만 말끔한 양복을 입고 종이 한 장을 들고 읽어 ‘복장 불량’ ‘처삼촌 벌초 연설’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런 얘기들은 두 진영의 ‘화학적 결합’을 바라지 않는 여권 인사들의 과도한 해석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합당 약속에 대한 안 후보의 미묘한 변화만큼은 고질적인 ‘간 보기 정치’로 보인다. 단일화 경쟁 막바지 안 후보는 ‘단일 후보가 되든, 안 되든 보선 후 국민의힘과의 합당’ 카드를 발표했다. “(2단계) 양당 합당의 기반 위에서 3단계로 범야권 대통합 추진”이라는 프로세스까지 꺼내 놨다. 반면, 단일화 후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비롯해 야권 인재들, 시민단체들이 모여 범야권 대통합이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다”면서 2, 3단계를 버무린 새 조건을 제시한 듯한 느낌도 줬다.
게다가 야권에선 윤 전 총장에 대해서도 “정교한 정치 데뷔 플랜이 진행 중”이라는 평가와 함께 “대선주자 여론조사에 올라간 지가 1년이 넘었는데 ‘한다, 안 한다’ 의사표명 하나 없다”는 불만도 나온다. 주변에선 ‘4월 출마 선언설’ ‘제3지대 창당설’ 등 온갖 설들이 난무하는데, 정작 본인은 원하는 질문에만 답하는 ‘선택적 메시지 정치’만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등의 사례처럼, 언제부터인가 한국 보수정당엔 굳은 의지를 갖고 정치판에 뿌리를 내려 성장하려는 지도자는 없어지고 명망가들의 ‘낙하산식 간 보기’만 난무하고 있다. 정치 자체를 만만하게 봤기 때문일 수도 있고, 1987년 민주화 이래 진퇴를 뚜렷이 하고, 혹독하고 오랜 테스트로 단련된 지도자만이 승리했던 점을 잊었을 수도 있다.
간 보지 않고 민정당과 합당한 김영삼이 투쟁 끝에 승리했고, 간 보지 않고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에 숙이고 들어간 노무현이 결국 대통령이 됐다. 국민들은 ‘간잡이’가 아니라 명쾌하고 명확한 지도자를 선택했다는 점을 야권 지도자들이 인식하지 못하면 야권의 내년 대선도 미래가 없다.
최우열 정치부 차장 dns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