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베스트 닥터]김은국 SRC병원장
김은국 SRC병원장은 올림픽, 유니버시아드 등 국제대회에 14차례 주치의로 참가한 스포츠 의학 분야의 명의다. 김 원장은 스포츠 의학과 재활치료를 접목해 모든 분야의 재활이 가능한 병원으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SRC병원 제공
《서울의 대형병원에만 베스트닥터가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 동네에, 또는 나만 아는 실력이 대학병원에 버금가거나 능가하는 의원·병원이 적지 않습니다. 뛰어난 실력과 연구 능력을 갖춰 전국에서 환자가 몰려오는 이런 의사들을 찾아내 ‘우리 동네 베스트 닥터’로 소개합니다.》
경기 광주시에 있는 SRC병원은 이름이 꽤 알려져 있다. 모든 질환을 다루지만 특히 재활치료로 유명하다. 환자들 커뮤니티에서도 이 병원을 추천하는 이들이 많다.
실제로 환자들이 각지에서 이 병원을 찾아온다. 지역별로 보면 경기 광주 출신 환자는 21%에 그친다. 경기도 전체로 넓힐 경우 64% 정도다. 나머지 36%는 전국 곳곳에서 재활 치료를 받기 위해 온 환자들이다. 올해 1월 이 병원에 새 원장이 취임했다. 김은국 병원장(49)이다. 다소 뜻밖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김 원장은 스포츠 의학으로 꽤 유명하다. 대한체육회 의무실장으로 근무하며 국가대표 선수들의 건강관리를 오랫동안 책임졌다. SRC병원도 재활치료로 유명하다지만 스포츠 의학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이 병원에 오게 된 까닭이 궁금했다.
○잘 나가는 병원 접고 체육회 의무실장으로
김 원장은 대학에서 재활의학과를 전공했다. 전공의 시절부터 태릉선수촌의 국가대표 선수들을 꽤 접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선수들을 치료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이 열렸다. 김 원장은 자신이 치료한 선수들이 시상대에 오르는 것을 TV로 지켜봤다. 김 원장은 “팔을 펴지 못했다가 내 치료를 받은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는 모습을 볼 때 뿌듯했다”고 말했다.
전공의를 끝낸 뒤 김 원장은 의원을 열었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그의 의원을 드나들었다. 김 원장이 병을 잘 고친다는 입소문도 퍼져 나갔다. 환자들이 넘쳐났다. 병원들이 건강보험공단에 청구하는 ‘급여비’ 규모를 보니 전국의 재활의학과 의원을 통틀어 3위였다. 당시 김 원장은 상당히 힘들었다고 했다. 이러다가는 아무 발전도 이루지 못할 것 같았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었다. 마침 대한체육회가 의무실장을 모집하고 있었다. 김 원장은 잘나가는 병원을 접고 2003년 대한체육회 의무실장이 돼 태릉선수촌에 들어갔다. 본격적으로 스포츠 의학에 발을 들여놓은 시점이었다.
그해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가 열렸다. 김 원장은 대회 기간 내내 의료와 관련된 모든 일을 도맡아 했다. 선수 진료는 물론이고 도핑 검사 같은 행정업무도 처리했다. 오전 6시에 시작된 하루 일과는 자정을 넘겨 끝났다. 이 대회를 시작으로 김 원장은 14회에 걸쳐 국제대회에 선수단 주치의 자격으로 참가했다. 굵직굵직한 대회만 추리자면 2004년 아테네 올림픽, 2006년 토리노 겨울올림픽,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패럴림픽, 2018년 평창 겨울패럴림픽 등이 있다.
○국제대회 참가 중에 美 의사면허 합격
김은국 원장이 환자의 손등 근육 이상 여부를 체크하기 위해 초음파 검사를 하고 있다(위 사진). 국제빙상연맹 연례 의료위원회에서 전현직 의료 고문(메디컬 어드바이저)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앞줄 가운데가 김 원장. SRC병원 제공
김 원장은 2008년부터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웨이크포리스트대 병원에서 근무했다. 현지 의사와 똑같이 외래 환자를 진료하고 당직 근무도 섰다. 물론 현지 의사와 똑같이 월급을 받았다. 김 원장은 “미국은 기초과학이 발달해 있어 탄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기초과학이 튼튼하니 어려운 문제가 생겨도 원칙적으로 풀어 나가는 게 인상에 많이 남았단다.
○국제빙상연맹 의료자문관 선정 영예
당초 미국 대학병원에 갈 때는 2년 근무가 계약 조건이었다. 하지만 김 원장은 1년 만에 국내로 복귀했다. 대한체육회가 곧 국제대회가 열리니 도와달라는 요청을 해왔던 것이다.
미국 현지 대학병원은 김 원장의 귀국을 만류했다. 영주권 발급을 도와줄 뿐 아니라 시민권을 획득하는 데 필요한 변호사까지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급여를 30% 인상하겠다는 당근도 제시했다. 김 원장은 “고민이 됐지만 개인적으로도 부모님과 가족이 있는 한국에 돌아오고 싶어 귀국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물론 그동안 미국에서 배운 것을 한국에서 펼치고 싶은 욕심도 강했다.
김 원장은 2010년 1월 대한체육회 의무실장으로 복귀한 후 밴쿠버 올림픽에 주치의로 참가했다. 그런데 느낌이 과거와 좀 달라졌다. 선수들의 부상만 걱정할 게 아니라 체계적으로 스포츠 의학을 연구하고 싶어졌다. 또다시 새로운 시도를 했다. 2012년 김 원장은 한국체육대 체육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동시에 스포츠클리닉 소장을 맡았다. 이후 김 원장은 한국체육대에 9년 동안 근무했다. 김 원장은 이 9년의 시간이 상당히 소중하다고 했다. 환자 진료에 얽매이지 않아 다양한 연구를 할 수 있었고, 적극적으로 일을 추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기간에 여러 학회에도 적극 참여했다.
○병원 인프라 활용한 장기적 재활치료 계획
2020년 초, 김 원장은 비보(悲報)를 접했다. 작가였던 누나가 급성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우울함을 떨칠 수 있는 변화가 필요했다. 한국체육대에서 근무한 지도 어느덧 9년. 마침 약간의 ‘매너리즘’도 생겼던 차였다. 운동선수가 아닌, 재활치료가 필요한 다양한 환자를 만나고 싶어졌다.
김 원장은 SCR병원을 택했다. 이유가 있다. 이 병원은 재활치료로 꽤 이름이 알려져 있다. 암이나 뇌출혈 후유증과 같은 만성질환의 재활치료를 받기 위해 전국에서 환자가 온다. 환자 수만 놓고 보면 웬만한 대학병원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둘째,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인프라도 잘돼 있다. 김 원장은 이 인프라를 이용해 장기적으로 스포츠 의학을 재활치료에 접목할 계획이다. 전문적인 운동선수 위주의 스포츠 의학을 학생이나 일반인에게까지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이 시스템이 갖춰지면 SRC병원은 만성질환의 전문 재활병원을 넘어 모든 종류의 재활이 가능한 병원으로 설 수 있다는 게 김 원장의 생각이다.
김 원장에게 ‘스포츠 재활’이란 어떤 것일까. 일반적으로 관절이나 근육에 손상이 갈 경우 다른 의사들은 쉬라고 한다. 김 원장에 따르면 스포츠 재활의 치료 방향은 좀 다르다. 김 원장은 “아프니까 무조건 쉬는 게 아니라 움직이면서도 아프지 않도록 치료하는 게 제대로 된 스포츠 재활 치료다”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또 “뇌출혈 후유증이 있을 경우에도 스포츠 의학을 접목해 재활치료를 하면 일상생활이 충분히 가능해진다. 그게 스포츠 재활의 목표다”라고 강조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