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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무죄 논란’ 강간 상황극 실행범에 징역 5년 확정

입력 | 2021-03-28 08:40:00


피해 여성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1심에서 무죄를 선고해 논란이 됐던 ‘강간 상황극’ 사건 관련 피고인들에게 모두 실형이 내려졌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달 대법원 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A씨(39)의 강간 혐의 상고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강간 상황극’이라며 A씨를 유도해 피해 여성을 성폭행하도록 유도한 B씨(29)에게도 징역 9년형이 확정됐다.

B씨는 2019년 8월 랜덤 채팅 애플리케이션에서 자신의 프로필을 ‘35세 여성’이라 거짓으로 작성한 뒤 “강간당하고 싶은데 만나서 상황극 할 남성을 찾는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A씨가 이 글에 관심을 보이며 B씨에게 연락했고, B씨는 A씨에게 집 근처 원룸 주소를 일러주며 자신이 그곳에 사는 것처럼 속였다. A씨는 그날 밤 주소 상의 원룸을 찾아가 애먼 여성을 성폭행했다.

검찰에서 “이런 범행은 처음”이라고 할 만큼 전례를 찾아볼 수 없었던 이 사건은 1심 판결이 나온 이후 더욱 공분을 사게 됐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주거침입강간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무죄가 선고됐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해 6월 4일 1심 재판부는 A씨가 B씨의 거짓말에 속아 일종의 합의로 상황극을 하는 것으로 알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가 자신의 행위가 강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거나, 알고도 용인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보기 어렵다. 강간범 역할을 하며 성관계한다고만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검찰은 즉각 항소한 뒤 법리 검토를 거쳐 A씨에게 강간 혐의를 따로 추가했다. 그로부터 6개월 뒤인 지난해 12월 4일 항소심 재판부는 무죄로 판단한 원심을 파기하고 A씨에게 강간죄를 적용해 징역 5년에 80시간의 성폭행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10년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등 취업제한 등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주소를 알려줄 정도로 익명성을 포기하고 이번 상황극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 강간 과정에 피해자 반응 등을 보고 이상함을 느꼈을 거라 보이는데도 상황극이라고만 믿었다는 피고인 주장을 납득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B씨는 1심에서 A씨를 도구로 이용해 피해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논리의 주거침입강간죄가 적용돼 징역 13년을 받았으나, 2심에서는 A씨에게 주거침입강간을 실행하게 했다고 봐서 주거침입강간 미수죄(간접정범)로 징역 9년이 선고됐다.


송치훈 동아닷컴 기자 sch5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