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진보 여성운동 ‘넘사벽’급 적자(嫡子)”
한명숙 전 국무총리.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여권의 ‘여성운동 대모’ 구명운동은 좌절된 것일까. 3월 19일 검찰은 한명숙(77) 전 국무총리에 대한 ‘모해위증교사 의혹’을 무혐의 처리했다. 특수부 수사 경험이 많은 전직 검찰 관계자는 “한 전 총리 사건은 물증이 많아 결론이 명확했다고 본다. 동생의 전세자금으로 쓰인 1억 원 수표 등이 대표적 증거”라며 “대법원이 (한 전 총리에게 돈을 건넨 건설업자) 동료 재소자의 법정 증언만으로 유죄를 판단하지 않았다. 정치적 의도로 사건을 계속 들추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여권이 ‘한명숙 살리기’에 나선 배경은 무엇일까. 일각에선 진보 여성운동계 인사가 다수 포진한 여당 내 한 전 총리의 상징적 위상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영희(필명 ‘오세라비’) 미래대안행동 여성위원장은 “한 전 총리는 진보 여성운동 진영의 적자(嫡子)이자 ‘넘사벽’급 투사였다”고 회고했다. 오랫동안 여성운동에 몸담은 한 인사도 “한 전 총리 사건은 대법원 판결까지 끝났다. 여권(女權)을 위한 헌신과 뇌물 수수는 전혀 별개로 법의 판단을 따르면 된다”고 말했다.
“동생 전세자금 1억 수표 등 물증 많아”
이화여대를 졸업한 한 전 총리는 1979년 ‘크리스천 아카데미 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대학에서 여성학을 강의하다 1980년대 후반 여성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 공동대표, 한국여성민우회 회장을 역임했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 처벌법) 제정에 앞장섰다. 여성운동을 함께한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고(故) 이희호 여사와 연으로 정치권에도 안착했다. 2000년 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됐고 이듬해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신설한 여성부 초대 장관을 지냈다. 노무현 정부 들어선 환경부 장관과 국무총리를 지냈다.
다만 한 전 총리의 비위만으로 여성운동 전체를 비난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많다. 앞서의 여성계 인사는 “한 전 총리가 여성운동 출신 정치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성운동 진영이 과도한 비난을 받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82호에 실렸습니다]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