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에 걸린 노부모와 그를 간병하는 자녀의 고된 삶.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단골 소재이자 우리 주변에서도 심심찮게 일어나는 일이다. 감독 플로리안 젤러는 새로울 것 없는 이 소재를 원작인 연극에 이어 영화 ‘더 파더’에서도 활용했다. 그럼에도 더 파더가 힘을 갖는 건 치매 환자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는데 있다. 치매 환자의 세상이 어떻게 뒤죽박죽이 되어 가는지를 관객이 ‘겪게’ 하는 이 영화는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 소름끼치도록 무섭다. 다음달 7일 개봉하는 더 파더는 93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남우주연상(안소니 홉킨스), 여우조연상(올리비아 콜맨), 각색상, 미술상, 편집상 6개 부문 후보에 들었다. 리 아이작 정 감독의 ‘미나리’와 작품상, 남우주연상(스티븐 연), 여우조연상(윤여정) 세 개 부문에서 경쟁한다.
영화는 80세 안소니(홉킨스)가 영국 런던에 위치한 자신의 안락한 집에서 클래식을 듣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를 찾아온 딸 앤(콜맨)과 일상적 대화를 나누는 5분 남짓이 관객이 이 영화를 편하게 볼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다. 일상적이기 위해 노력하던 둘의 대화는 금새 공포스러운 실체를 드러낸다. 매번 자신이 시계를 둔 위치를 잊어버리는 안소니는 “간병인이 내 손목시계를 훔쳐 갔다”며 이전 간병인을 도둑으로 몬다. 프랑스 파리로 떠나야 하는 앤은 새 간병인을 구해야 하지만 “난 아직 멀쩡하다”며 간병인을 거부하는 안소니의 고집에 시름이 깊어 간다.
영화가 더욱 공포스러워지는 순간은 관객이 직접 치매를 겪게 되면서부터다. 앤이 떠나고 난 뒤 한 남자가 소파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다. “누구냐”며 경계하는 안소니에게 ‘그 남자’(마크 게티스)는 자신이 앤의 남편 폴이라며 “저를 못알아보시겠느냐”고 묻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앤이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 여성’(올리비아 윌리암스)은 딸이 아니다. “앤은 어디 갔느냐”는 안소니에게 그 여성은 “아버지, 제가 앤이잖아요”라며 그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이후 앤의 남편의 얼굴은 계속해서 바뀌고, 그 여성은 앤에서 간병인으로, 요양시설의 간호사로 등장한다. 앤의 진짜 남편은 누구인지, 그 여성의 실체는 무엇인지 관객도, 안소니도 확신할 수 없다.
홉킨스가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털어 놓은 이야기는 꽤나 놀랍다. 요양시설에서 흐느끼는 장면을 촬영한 뒤 감독에게 “다음 장면을 촬영하기 전까지 감정을 추스를 시간을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 타인의 삶을 표현하는데 익숙해졌을 법도 한 60년의 연기경력이 무색하게도 해당 장면을 촬영하다가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올라 ‘차오르는 슬픔’을 참을 수 없었다고 한다. 나이가 든다는 그 공평한 비극 앞에 선 인간의 나약함, 이를 직시하는 데서 오는 슬픔은 영화관을 찾은 관객 누구나 경험하게 될 것이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