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 개인 투자자 피해 우려
“안철수라더니…. 지라시에 ‘빨래질’(작전세력에게 탈탈 털렸다는 뜻)당했다.”
23일 오전 10시경 ‘서울시장 야권 단일후보가 오세훈 후보로 결정됐다’는 속보가 나오자 직장인 이모 씨(32)는 탄식을 내뱉었다. 임원이 안랩 출신이어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관련 ‘테마주’로 분류된 전기공업회사 ‘써니전자’의 주가가 전날 종가보다 20% 넘게 폭락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날 아침 일찍 ‘안 후보가 근소한 차이로 오 후보를 이겼다’는 등의 지라시가 돌았다. 이 소식을 들은 이 씨는 1000만 원가량을 베팅했는데 결국 거짓 정보였다는 게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안 씨의 투자액이 800만 원으로 줄어드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1시간 남짓. 이날 써니전자 주가의 등락은 31.98%나 됐다.
○ “연결고리를 찾아라, 그러면 오를 것이다”
이달 들어 유가증권 시장과 코스닥 시장에서 가장 높은 수익률을 보인 5개 종목은 모두 ‘정치테마주’로 분류되는 종목이었다. 2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교육서비스 업체인 ‘NE능률’은 이달 들어 주가가 259.06% 올라 전체 상장기업 중 상승률 1위를 차지했다. NE능률은 이달 초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총장직을 내려놓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유력 대선 주자로 떠오르자 급등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최대주주인 윤호중 한국야쿠르트의 회장이 윤 전 총장과 같은 ‘파평 윤(尹)씨’라는 이유였다. NE능률 측은 주가가 급등하자 “과거 및 현재 당사의 사업과 윤 전 검찰총장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공시까지 했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관심은 식지 않고 있다. 수익률 2∼4위인 웅진(172.35%)과 덕성(159.23%), 승일(145.33%) 등도 모두 윤 전 총장 관련주로 통한다. 역시 회장이 파평 윤씨라거나, 사외이사가 서울대 법대 동문이라는 등의 기업 실적과 무관한 황당한 이유가 거론된다.
정치 테마주는 기업 실적과 무관하게 정치 상황에 따라 주가가 춤을 춘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창업한 안랩은 안 대표가 정계 복귀를 선언하면서 올해 들어 주가가 20% 넘게 올랐다가 서울시장 단일후보 경쟁에서 밀리자 23일 하루에만 15% 넘게 급락했다. 대선 후보로 떠오른 이재명 경기도지사 관련 테마주로 불리는 동신건설의 주가는 이달 들어 16% 넘게 하락세다. 동신건설은 이 지사의 고향인 경북 안동시에 본사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관련주로 떠올랐다가 최근 잠잠해졌다.
○ 유동성 장세에 손실 경고음 높아져
정치인들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거나 미약한데도 ‘묻지 마 투자’에 주가가 휘둘리다 보니 검증되지 않은 투자 정보도 빠르게 퍼지고 있다. 최근 텔레그램, 카카오톡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오픈 채팅방, 개인 방송 등이 거짓 정보의 유통에 가속을 붙이고 있다. SNS에선 학연, 지연, 혈연 등 온갖 이유를 엮은 ‘정치인별 관련주’ 목록이 공공연하게 공유된다.
실제로 정치테마주는 선거철을 앞두고 급등했다가 선거가 끝나면 하락할 때가 많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16∼19대 대선 기간 70개의 정치테마주를 분석한 결과 낙선자 관련 테마주는 물론 당선자 관련 테마주도 선거일 직후 상대적으로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자현 zion37@donga.com·이상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