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지원금 10개월 현장에선]<上> 만족도 엇갈리는 수혜자들
서울 송파구에서 개인 트레이닝(PT) 헬스클럽을 운영하는 정은주 씨가 22일 기구들을 정리하다가 잠시 앉아 쉬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경기 성남시에서 노래방을 하는 정상현(가명·56) 씨는 최근 가게 문을 닫고 아내와 노래를 불렀다. 스트레스나 풀 겸 시작한 노래가 한 곡, 두 곡 아무 말 없이 4시간 동안 이어졌다. 마이크를 놓은 아내가 “이젠 그만해요”라고 했을 때 정 씨는 그게 노래를 그만 부르자는 말이 아닌 걸 알았다. 그들은 노래방을 접고 다른 일을 준비하고 있다.
정 씨는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영업제한 조치로 생긴 손실을 정확히 조사해 ‘보상’을 해줘야지 왜 일률적 ‘지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 정교한 실태조사 없어 나랏돈 누수 우려
정부는 빠른 속도로 재난지원금을 주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자영업자들은 시간이 다소 걸려도 정교한 조사를 토대로 피해가 큰 곳에 돈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일례로 여행업계는 영업이 불가능해져 집합금지 상태와 다름없는데도 2차와 3차 재난지원금 지급 당시 100만 원씩만 받을 수 있는 ‘일반 업종’으로 분류됐다. 여행사 대표 A 씨는 “1년째 매출이 0원”이라며 “차라리 여행업도 집합금지 업종으로 해 지원 규모를 늘렸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무자격자에게 나랏돈이 새는 조짐도 감지된다. 부산에서 카페를 하는 권도일 씨(49)는 “현장심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아 영업을 하지 않으면서 서류상으로만 사업자등록을 한 사람들이 재난지원금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4차 재난지원금 지급 때 소규모 농가에 30만 원을 주기로 했지만 농민들은 ‘0.5ha 미만’이라는 땅 크기를 기준으로 한다는 데 의문을 표시했다. 실제 농사를 짓지 않으면서 땅만 가진 ‘무늬만 농민’이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충남 홍성에서 고추를 재배하는 유동균 씨(47)는 “농촌의 사정을 파악하지 않고 정책을 낸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 대리기사 프리랜서 등 “지원금 덕에 숨통”
다만 자영업자들은 같은 업종이라도 규모를 고려해 재난지원금을 차등 지급해야 지원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본다. 서울 성동구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한모 씨(52)는 “면적이 70m² 이상인 학원과 1인이 운영하는 교습소 간 고정비용은 큰 차이가 난다”며 실태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지원 체계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산에서 헬스클럽을 운영하는 차상민 씨(41)는 “상권이 죽으니 업종에 관계없이 다 같이 문을 닫고 있다”며 “소비쿠폰으로 상권을 살리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에서 중국음식점을 운영하는 김모 씨(60)는 “세금을 감면해 주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본보가 만난 많은 자영업자들은 저리 대출을 요구했다. 숙박업을 하는 정모 씨(60)는 “저리 대출을 늘리거나 TV 시청료를 한시적으로 인하하는 등 지속 가능한 정책을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행업을 하는 A 씨는 “지금은 관광 사업자 등록을 근린상가에만 하도록 돼 있는데 자택에서도 사업을 하도록 해주면 임차료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하경 whatsup@donga.com·박성진·이지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