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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진영]여자 공대생

입력 | 2021-03-30 03:00:00


“올해는 SES야, 핑클이야?”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대학에 신입생이 들어오면 공대생들은 이런 궁금증을 공유했다. 100명 넘는 정원에 여학생이 달랑 3, 4명이어서 걸그룹 멤버 숫자와 비교한 것이다. 하지만 요즘 공대는 다르다. 지난해 공대 재학생 중 여성 비율은 사상 최고인 20.1%로 집계됐다.

▷여성 공대생이 증가한 주요 계기는 1996년 이화여대가 여대로는 처음으로 공대를 신설한 것이다. 1980년 1.2%에 불과했던 공대 여학생 비율은 1997년 10%를 넘어섰다. 2015년에는 숙명여대에도 공대가 생겼다. 전공별로는 섬유공학(37.4%) 조경학(36.3%) 화학공학(36.2%)의 여학생 비율이 높고, 자동차(5.2%) 기계(8.3%) 전기(9.9%) 공학은 아직도 남학생 비율이 압도적이다.

▷공학은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여성과 궁합이 맞는 학문이다. 실용적인 해결책을 찾는 학문이어서 인문학적인 상상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2018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자료를 보면 15세 학생들의 수학(남자 492점, 여자 487점)과 과학(488, 490점) 점수는 남녀 간 별 차이가 없다. 반면 읽기 영역은 여학생(502점)이 남학생(472점)을 압도한다. 특히 학문 간 융·복합이 중요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엔 여성들의 활약이 더욱 기대된다. 세계 최초의 프로그래머로 알고리즘을 발견한 에이다 러브레이스도 영국 시인 바이런의 딸로 어려서부터 수학 과학 교육을 집중적으로 받은 여성이다.

▷하지만 전체 여대생 비중(42.6%)을 감안하면 여성의 공대 기피 현상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봐야 한다. 남성 중심적 교육 과정과 취업 시장에서의 성차별이 원인으로 꼽힌다. 공대 교수들 중 여성은 5%가 조금 넘는다. ‘82년생 공대 여성’을 추적 조사한 결과 이들의 2006년 취업률은 63.2%로 남성(70.6%)보다 낮았다. 대학 입학 때는 전체 정원의 20%에 가까웠지만 취업 후 팀장급이 되면 그 비중은 3.8%로 쪼그라들었다(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공학 분야에서 남성 편중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거론되는 것이 자동차 설계다. 교통사고가 나면 여성이 중상을 입을 확률이 남성보다 훨씬 높다. 자동차 안전 설계가 남성을 기준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과학 기술의 혜택을 남녀 모두 누리려면 해당 분야에 더 많은 여성이 참여해야 하는 이유다. 여성의 공학적 재능이 사장된다면 공학 발전에도 손해다. ‘여자 공대생’이 주목받는 존재가 되지 않도록 여성 친화적인 교육 환경 조성과 취업 불이익 해소에 힘써야 한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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