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용 칼럼니스트
롤린의 인기에는 기술적 배경도 있다. 인터넷TV(IPTV)다. 국방부는 2009년부터 생활관 내에 IPTV 설치를 시작해 2013년 보급을 완료했다. 특정 콘텐츠를 무한 반복해서 볼 수 있는 기술적 인프라가 구축된 셈이다. 그때 군 생활을 한 젊은이들에게서 “IPTV로 계속 돌려보기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군내 IPTV 보급 시기는 걸그룹에 ‘군통령’이라는 별명이 붙은 때와도 묘하게 겹친다.
일반병으로 복무한 사람이라면 군대가 걸그룹 학습기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군 장병들은 ‘사회의 것’에 대해 비합리적일 정도로 극심한 갈증을 느낀다. TV를 보지 않던 남성들도 군대에서 온갖 프로그램을 볼 만큼. 그 결과 장병들은 현대 한국에서는 찾을 수 없는 맹목적 시청자층이 된다.
요즘 각 부대에는 ‘싸지방의 엑셀 파일’이 있다고 한다. 싸지방은 ‘사이버 지식 정보방’의 약자인 군부대 내 컴퓨터실이고, 엑셀 파일은 ‘특정 영상의 몇 분 몇 초에 이런 그룹이 나온다’는 정보를 모아둔 목록표다. 부대에 따라 그 파일을 최고 선임병이 보유하거나 공용 컴퓨터에 있는 걸 사람들이 업로드한다고 한다. 롤린은 군 장병의 스마트폰 사용이 허락되기 1년 전인 2017년에 발매되어 ‘싸지방의 엑셀 파일’을 타고 부대 안의 병사들에게 계속 스며들 수 있었다.
모든 게 너무 빨리 변하는 한국에서는 이마저도 옛날이야기다. 2018년부터 군내 스마트폰 반입이 허가되었기 때문이다. 2020년 전역한 어느 대학생이 말했다.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전에는 단체로 공유하는 감성이 있었지만 이제 관심사가 비슷한 친구들이 따로 모입니다. 한 부대에 있어도 별개의 집단 같아요. 스마트폰이 보급됨에 따라 콘텐츠 소비도 개별적으로 변했으니까요.” 스마트폰이 완성한 멀티 트렌드 시대가 군대에까지 왔다. 브레이브걸스의 끈질긴 근성과 뛰어난 인품과 ‘롤린’의 매력과는 별개로, 제2의 롤린은 나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박찬용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