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지원금 10개월 현장에선]
<下> 정치화에 선 긋는 수혜자들

26일 서울 관악구에서 건어물 노점삼을 운영하는 김모 씨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노점상은 4차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에 포함됐지만 사업자로 등록돼 있어야 한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박철현(가명·52) 씨는 지난해 1월 서울 강남 지역에 실내골프연습장을 차렸다. ‘개업 효과’ 덕에 첫 달 매출이 2000만 원을 넘길 정도로 성공적이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집합금지 업종으로 분류돼 가게 문을 닫는 시간이 늘어났고 대출 이자와 임차료가 밀렸다.
박 씨는 재난지원금이 꼭 필요하다고 보지만 여야 정치인들이 지원금을 두고 정치적 득실을 따질 때면 울화가 치민다. 그는 “표를 염두에 두고 지원금 주겠다는 쪽이나, 무작정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는 쪽이나 자영업자들의 현장 사정을 모르는 건 마찬가지”라고 했다.
○ ‘재난지원금의 정치화’에 선 긋는 수혜자들

서울의 한 대학에 다니는 이하영 씨(24)는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돕는다는데 정치 논리를 들이미는 정치권의 행태에 신물이 난다”고 말했다. 대구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는 박모 씨(39)도 “선거를 앞두고 지원금 이슈를 활용하려고 하는 여야 정치권을 보면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 “정치논리 들이대는 여야 모두에 실망”
재난지원금 수혜자들은 지원금 지급 과정에서 실태조사를 제대로 못 한 여당과 뾰족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보편적 지급 방식에 끌려다닌 야당에 모두 비판적인 모습을 보였다. 일부는 투표할 정당이 없다며 부동층으로 돌아설 조짐도 보였다.인천에서 당구장을 운영하는 신정욱 씨(33)는 여당 지지자였지만 잇따른 영업제한 조치로 피해가 커지는 과정에서 지지하는 정당이 없어졌다고 했다. 신 씨는 “오후 9시 또는 10시가 왜 영업제한의 기준이 되는지, 4명은 모여도 되는데 5명은 왜 안 되는지 등 납득할 수 없는 조치가 쏟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여당이 싫어진 거지, 야당이 좋아진 것도 아니라고 덧붙였다. 대학생인 김모 씨(26)는 “부모님이 고깃집을 운영하시는데 현장과 동떨어진 영업제한 조치를 보면서 정부와 여당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고 말했다.
보수 야당을 지지하다가 재난지원금 관련 ‘표퓰리즘’ 논란이 불거지자 등을 돌린 사람도 적지 않다. 강원의 한 전통시장에서 육류 도매업을 하는 이모 씨(62)는 “돈 주면 여당 찍을 거라고 말하는 정치인들에게 정나미가 떨어졌다”며 “‘돈 주면 표 줄 것’이라는 발상 자체가 유권자의 수준을 낮게 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기업에서 다니는 조모 씨(37)도 “코로나19 정국에서 보수 야당이 명확하게 대안을 제시한 적도 없지 않느냐”며 “보편적 지원에 반대하는 척하다가 결국 선거를 앞두고 여당 의견에 동조해 끌려가는 모습에 실망했다”고 말했다.
박성진 psjin@donga.com·김하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