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를 넘어 소통하던 현장에서 겪은 ‘차별’
누구나 폭력의 피해자, 목격자가 될 수 있기에
우리는 더 가까이 모여 혐오를 이겨내야 한다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이제 막 행사를 시작한 터라 나는 우선 그 장면을 무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 앞에는 한국 문학 낭독을 듣기 위해 모인 많은 청중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도 늦은 저녁이었고 무료가 아닌 유료 행사였다. 행사 시작 전 낭독을 맡은 배우들이 한껏 부푼 얼굴로 오늘 밤 낭독할 수 있어 기쁘고 기대된다고 했기에 더더욱, 만석을 채운 스웨덴 청중들이 놀라울 정도로 집중해 우리의 시와 소설을 듣고 있었으므로 더더욱 이 ‘안전한’ 밤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선배 시인들이 낭독하는 동안에도 나는 그 두 명에게서 눈을 뗄 수는 없었다. 그들이 인종주의자라는 사실은 그 홀의 누구도 알지 못하고 무대에 서서 목격한 나만 알고 있으니까.
최근 일련의 아시안 혐오 범죄를 보면서 나는 그날의 스톡홀름을 떠올렸다. 그해 스웨덴에서 느낀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과 열기는 작가로서의 내 삶에 활기가 되었지만 그 환대의 기억은 늘 두 명의 인종주의자들의 제스처와 함께 시작되기 때문이다. 나는 행사요원과 주최 측이라는 안전장치 속에서도 그들이 보여준 적대에 공포를 느꼈다. 그들이 길을 가다가 우연히 마주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적의와 혐오를 보여주기 위해 자기 돈까지 지불하고 직접 그곳을 찾아왔다는 사실이 공포와는 또 다른 ‘훼손’을 남기기도 했다. 그곳은 인간의 고독과 슬픔, 상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찾아나가는 평화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였고 무대에 선 작가들은 그 메시지의 전달자였기 때문이다.
아직도 눈에 선한 그 인종 차별의 제스처가 떠오를 때면 나는 그날 밤 그들은 무엇을 가져가고 우리는 무엇을 가져갔을까 분별하기 위해 애쓴다. 그날 우리는 이질적인 언어가 불러일으키는 언어적 아름다움에 귀 기울이며 지적 자극을 누릴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서로 다른 대륙에서 살아온 이들이기에 시와 소설로 주고받는 우리의 이 대화가 더 특별하며 삶을 평화롭게 만든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날 밤 우리는 같은 자리에 머물며 서로를 존중하고 포용하는 인간이기를 택했고, 그들은 양 눈을 찢는 혐오의 제스처로 그 밤의 연대에서 스스로를 열외시킨 채 돌아가기를 선택했다. 앞으로 우리에게는 어떤 날의 밤을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날까.
나라 안팎으로 들리는 불행한 소식들이 쌓여가는 지금, 나는 종종 그날의 스톡홀름에 서게 된다. 실제 스톡홀름의 밤이 그랬던 것처럼 다수의 사람들이 함께 있다고 생각하면 두려움은 줄고 안전하리라는 생각이 들고, 만약 곁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면 더한 공포를 상상하게 된다. 누구나 무대에 선 채 느닷없는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일, 누구나 객석에 서서 그 폭력의 목격자가 될 수 있는 일. 우리가 더 가까이 모여 혐오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행동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