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터키 수도 앙카라에서 오른손을 들어 연설 중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그는 집권 내내 이슬람 원리주의와 오스만튀르크의 부활을 선언하며 철권통치를 펴고 있다. 이로 인해 낙후된 경제구조의 개선, 터키 금융체제에 대한 불신이 해소되지 않는데도 중앙은행장을 밥 먹듯 갈아 치우고 금리 인상을 억눌러 비판받고 있다. 앙카라=AP 뉴시스
하정민 국제부 차장
터키 중앙은행은 리라가 급락할 때마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방어에 나섰다. 급한 불은 껐지만 근본 대책은 될 수 없었다. 터키를 포함해 브라질 아르헨티나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신흥국발 금융위기의 진앙으로 꼽히는 나라는 빈약한 산업기반과 정정불안으로 포퓰리즘이 창궐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진짜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정치란 뜻이다.
에르도안은 집권 중 6명의 중앙은행 수장을 임명했다. 각각 2006년과 2011년 자리에 앉힌 두르무스 일마즈 총재, 에르뎀 바스지 총재는 5년 임기를 지켜줬다. 이후 무라트 제팅카야(3년 3개월), 무라트 우이살(16개월), 나지 아그발(4개월) 총재로 갈수록 임기가 짧아졌다. 모두 에르도안의 명을 거역한 채 금리를 올리거나 올리려다 내쳐졌다. 20일 취임한 사하프 카브지오글루 총재의 임기 역시 에르도안만 안다.
집권 초 잠시 시장경제와 세계화를 강조하는 듯 보였던 에르도안은 2011년 3선 총리가 된 후부터 노골적인 종신집권을 시도했다. 4선을 금지한 집권당 당규로 추가 집권이 어려워지자 법을 바꿔 대통령에 올랐고 여성의 강제 히잡 착용, 주류판매 규제, 사형제 부활 등 이슬람 원리주의 정책을 강화해 ‘현대판 술탄’이란 별명을 얻었다. 노골적인 반대파 탄압, 수조 원대로 추정되는 에르도안 일가의 비리 의혹, “양성 평등은 자연 이치에 어긋난다” 등 각종 막말에도 상당수 국민은 “오스만튀르크의 영광을 부활시키겠다”는 에르도안을 지지한다.
터키 국민은 왜 독재를 묵인할까. 1453년 동로마를 멸망시킨 후 500여 년간 중동, 중부유럽, 북아프리카에 걸친 제국을 건설했던 오스만은 1차 세계대전 때 독일 편에 섰다가 영토 대부분을 잃고 왕정도 붕괴됐다. 초대 대통령 케말 파샤는 정교분리, 히잡 금지, 여성 참정권, 라틴알파벳 사용 등 세속주의가 핵심인 근대화 정책을 펴 혼란을 수습했고 여전히 국부로 추앙받고 있다.
문제는 세속주의로 양극화가 심해졌다는 데 있다. 자본가, 대도시 엘리트, 유럽에 가까운 북서부는 근대화 혜택을 누렸지만 저소득층과 남동부 주민은 소외됐다. 기층민 출신인 에르도안 또한 이 점을 노려 생필품인 빵과 차(茶)값을 낮추고 자동차와 고급 가전제품 세율을 높였다. 또 낙후된 남동부에 댐 도로 등 각종 인프라를 건설하고 인류 전체의 문화유산인 아야소피아 성당을 이슬람 사원으로 바꾸는 등 핵심 지지층인 저소득층과 보수 유권자의 입맛에 맞는 정책으로만 일관하고 있다.
터키는 인구 8300만 명의 68%가 15∼64세인 젊은 나라다. 동서양이 교차하는 지정학적 이점, 넓은 국토, 풍부한 자원, 오스만의 찬란한 문화유산 등도 보유했다. 그런데도 각각 12%를 넘나드는 고물가와 고실업, 인구의 2.3%가 하루 수입 5.5달러 미만의 절대 빈곤에 시달리는 불평등이 심각해 세계적 강대국으로 발돋움할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에르도안은 중앙은행장을 포함한 무능한 경제 관료가 자신의 뜻을 제대로 받들지 못해서라고 주장할지 모르나 터키 경제의 최대 불안 요인은 누가 봐도 에르도안 그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