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말로는 유권자를 존중한다고 하지만 정치인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내 한 표는 그저 한 표일 뿐. 투표가 감정적인 행위라는 점도 꿰뚫고 있습니다. 투표의 주역은 이성이 아닌 감성, 의식이 아닌 무의식입니다. 따라서 선거 막판에는 마구잡이 말들이 난무합니다. 부정적인 이미지를 상대방에게 씌워서 유권자의 감성과 무의식을 자극해 판세를 유리하게 하려는 전략입니다.
모든 선거운동본부는 각종 전략을 열심히 짜내서 써먹습니다. 첫째, 불안 분노 공포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유권자가 경쟁 후보에게 느끼도록 노력합니다. 우리 후보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 한 가지보다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 한 가지가 훨씬 더 효과적입니다. 둘째, 편을 가르는 일도 서슴지 않습니다. 지지층에게는 소속감을 부여하면서 자존감을 높여줍니다. 그러면 지지층이 알아서 상대편 사람들을 적대시하니 일거양득입니다. 지연과 학연은 기본이고 이득만 있다면 어제의 원수도 오늘의 친구로 거론합니다. 정치적 태만함을 숨기기에도 편 가르기가 좋습니다. 셋째, 언어의 연상 작용을 활용하는 미묘한 전략도 있습니다. 연구에서 입증이 되었습니다. 상대방을 일단 혐오스러운 냄새를 풍기는 단어로 표현합니다. 진화 과정에서 나쁜 냄새는 곧 질병이므로, 나쁜 냄새를 떠올리는 단어는 본능적으로 혐오감과 연결됩니다. 넷째, 시간이 촉박하니 자극적인 말들을 적극적으로 씁니다. 산만하던 청중의 집중력이 확 올라가고 그들의 귀에 쏙 들어가면서 언론에도 보도됩니다. 선거 운동에서 저지르는 ‘말실수’는 실수가 아닌 의도된 계획의 결과입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어야 한다는 기대와 달리 투표의 주역은 감정이고, 구체적인 행위는 내적 편향성을 기반으로 이루어집니다. 내적 편향성은 일찍부터 마음에 새겨진 가치와 믿음으로 행동 기준이 됩니다. 합리적인 판단으로 보이는 경우도 얻을 수 있는 정보와 인지 능력의 제한성으로 인해 주관성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념적 성향도 자신의 성격에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을 선택한 결과입니다. 어떤 이념도 모든 정책에 차질 없이 적용될 수는 없습니다. 한쪽으로 치우친 것이 이념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후보자가 내세운 특정 정책이 반드시 시행된다는 보장도 없고 책임을 물어보았자 허망할 겁니다. 내가 하는 투표가 내적 편향성과 느낌에 따른 결정이어도, 때로는 직관이 더 정확할 수 있습니다. 다만, 자신의 성향과 판단을 성찰하려는 태도는 중요합니다. 그러면 실수를 줄일 수 있습니다.
투표는 이성과 감성의 싸움이자 의식과 무의식의 다툼입니다. 비이성적인 이유가 이성적인 이유를 앞선다는 설이 우세합니다. 결국 투표는 자신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려고 하는 행위일지도 모릅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