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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앞에 겸손하라[이은화의 미술시간]〈156〉

입력 | 2021-04-01 03:00:00

안드레아 만테냐 ‘죽은 그리스도에 대한 애도’, 1483년경.


예수의 죽음을 이토록 비참하고 슬프게 표현한 그림이 또 있을까. 15세기 이탈리아 화가 안드레아 만테냐는 죽은 예수의 모습을 너무도 생생하게 그려서 보는 이를 충격에 빠뜨린다. 게다가 화가는 이 그림을 죽는 날까지 소중히 간직했다. 그 이유가 뭘까? 죽은 예수를 애도하는 그림은 많은 화가들이 그렸지만, 만테냐 그림이 가장 유명하고 실험적이다. 우선 구도가 특이하다. 예수의 주검을 발아래서 본 시점으로 그렸다. 화면 안에 몸을 세로로 그려 넣기 위해 극단적인 단축법을 사용했다. 그 결과 예수의 몸은 실제보다 짧아졌고, 발도 매우 작게 그려졌다. 축 늘어진 양손과 발에는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생긴 상흔이 선명하다. 싸늘한 주검을 덮은 천과 상처 난 가슴 위로 보이는 예수의 얼굴엔 고통이 맺혀 있다. 곁에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는 여자는 성모 마리아다. 예수의 제자인 요한과 마리아 막달레나도 옆에서 울고 있다.

만테냐는 다른 화가들과 달리 예수를 미화하지 않았다. 고통스럽게 죽어간 한 청년의 처참한 모습을 우리 눈앞에 보여줄 뿐이다. 성모 역시 주름 파인 얼굴로 자식 잃은 고통에 울부짖는 노모로 묘사했다. 그렇다고 예수를 패배자로 그릴 수는 없었을 터. 화가는 예수의 생식기를 과감하게 그림의 한가운데로 배치했다. 이는 새로운 생명의 탄생, 즉 부활의 희망을 상징한다. 만테냐는 이 그림을 죽을 때까지 곁에 두었다. 교회나 귀족이 아니라 자신의 장례용 예배당을 위해 제작했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만토바의 궁정화가로 부와 명성이 최고조에 달해 있었지만,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생각하며 겸손하고자 했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자가 있을까.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있지만 죽음은 여전히 두려움의 대상이다. 만테냐의 그림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죽음 앞에 겸손하라고 경고하는 듯하다. 아울러 상실의 슬픔은 사랑에서 비롯된 당연한 감정이니, 참지 말고 실컷 슬퍼하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