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피천득-법정 ‘스타 필진’… 국내 최장수 문화교양 월간지 창간 51주년 기념호서 새단장… 손재형 선생 붓글씨 제호 대신 젊은층 타깃 영문 ‘SAMTOH’ 배치… 음식 등 일반인 취향 맞춘 글 게재 “누구나 구매” 3500원 가격 그대로
왼쪽부터 이해인 수녀, 피천득 시인, 법정 스님
“휴…. 아들아, 우리 ‘샘터’가 어디 간 거니?”
최근 김성구 샘터 대표(61)가 새롭게 단장한 월간지 ‘샘터’를 건네자 어머니 이용자 여사(89)는 한숨을 쉬었다. 이 여사는 샘터를 처음 만든 고(故) 김재순 전 국회의장의 부인으로 51년간 샘터를 곁에서 지켜본 인물. 표지와 구성이 기존과 완전히 달라진 샘터를 보고 깜짝 놀란 것이다.
이 여사는 샘터를 며칠 만에 다 읽었다. 그러고선 아들인 김 대표에게 아무런 불만도 말하지 않았다. 김 대표는 “어머니가 새로운 샘터도 기존 샘터의 정신을 계승했다는 점을 알아봐 주신 것 같다”며 “샘터에 오랫동안 글을 쓰셨던 이해인 수녀님도 ‘예쁜 샘터’로 다시 태어났다며 축하해 주셨다”고 말했다.
가장 눈에 띄는 샘터의 변화는 표지 제호다. 1970년 4월 창간호 당시 서예가 손재형 선생이 붓글씨로 쓴 이래로 50년간 사용한 ‘샘터’ 제호가 사라졌다. 그 대신 영문 ‘SAMTOH’를 하단에 배치했다. 이종원 샘터 편집장은 “샘터의 상징 같은 제호를 바꾸기까지 고민이 많았다”며 “시대가 변한 만큼 젊은 세대들이 좋아할 수 있는 서체로 제호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과거 표지에 ‘○○년 ○월호’식으로 호수를 표시하는 것도 없앴다. 언제 구매해도 좋은 단행본의 성격을 가미하기 위해서다. 기존 샘터가 대학교수나 문인들의 에세이를 담았다면 새 샘터는 일반인의 취향에 초점을 맞춘 글을 싣는다. 4월호에선 ‘취향대로 살고 있나요?’를 주제로 음식, 반려동물 등에 대해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취향을 반영해 이전보다 사진을 더 많이 실었다.
하지만 가격은 바뀌지 않았다. 112쪽인 4월호 가격은 직전 호와 같은 3500원이다. “누구나 사서 읽을 수 있도록 샘터는 항상 담배 한 갑(현재 국산 담배 4500원)보다 싸야 한다”는 김 전 의장의 생전 원칙에 따른 것이다.
변화에 두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생존을 위해선 바꿔야 했다. 김 대표는 30대 편집자들을 주축으로 샘터를 바꾸라고만 부탁한 뒤 편집 방향에 대해선 일절 보고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혹 잘못 만들어질까 밤잠을 설쳤지만 새 샘터를 받아들곤 기우였다는 걸 깨달았단다. 김 대표는 “오랫동안 샘터를 만든 내 노하우가 갇혀 있는 생각이고 오히려 변화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 전혀 참견하지 않았다”며 “이제 새로운 샘터의 주인공들을 받아들이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