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01주년] 극과극-청년과 청년이 만나다
‘소유냐 공유냐, 그것이 문제다.’
동아일보와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한규섭 연구팀이 만든 ‘정치·사회 성향 조사’에서 진보 4번째인 대학원생 이진명 씨(26)는 ‘주택 공유론자’다. 결과 값은 정 가운데가 중도라면, 보수와 진보는 각각 1~50까지 나뉘고 성향이 강해질수록 숫자가 작아진다.
서울의 한 고시원에서 월세 30만 원을 내고 살아가는 진명에게 집은 ‘감히 오르지 못할 사다리’다. “내가 그 사다리를 오를 수 없다면 차라리 사다리를 엎어버리자”는 게 그의 주장. 진명은 “청년뿐 아니라 중산층에게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해 주거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동산 공유파 VS.소유파. 세계관 최강자들이 16일 오후 6시 반경 서울 성북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진명=저는 아무리 노력해도 서울에서 내 집을 못 살 것 같아요. 부모님이 집값을 보태줄 수도 없는 형편이에요. 지금 당장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수 없으니까, 그게 너무 힘드니까 차라리 사다리를 엎어버리자는 거예요.
▽희성=심정은 이해해요. 하지만 소유에 대한 욕망은 인간의 본성이에요. 아무리 규제해도 본성까지 막을 수는 없어요. 차라리 서울의 낙후 지역을 재개발해서 민간 건설사가 아파트를 대량으로 공급해주면 어떨까요.
▽진명=당장의 분양가가 10억 원대일 텐데 제가 무슨 수로 살 수 있을까요. 재건축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는 청년들은 부모 잘 만난 금수저들뿐이에요.
▽진명=우리 사회가 주택을 자산으로 보기 때문에 빈부격차가 더 커진다고 봐요. 임대주택 공급이 확대되면 확대될수록 더 이상 집을 살 필요가 없는 사회로 나아가지 않을까요. 그렇게 되면 자산으로서의 집도 가치를 잃을 거라고 봐요.
▽희성=글쎄요. 현실적으로 저 같은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집을 사요. 저는 아내와 미래의 아이에게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고 싶어 대출까지 받아 집을 샀어요. 결혼한 지 5년 만에 딸아이가 태어났는데, 집 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아이가 여기저기 떠돌지 않고 한 곳에서 추억을 쌓을 수 있으니까요.
끝내 이견을 좁히진 못했다.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하지만 2시간이 넘는 대화를 마친 뒤 희성은 진명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취업을 할 수 있을까,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을까, 아이를 낳고 살아갈 수 있을까 전전긍긍 고민하던 20대의 자신을 꼭 닮은 진명에게 희성은 이런 말을 남겼다.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가요. 집값은 오르는데 대출은 막혀 있지, 취업은 점점 더 어려워지지…. 길이 다 막혔는데 이제 와서 집을 사라고 하는 게 오히려 더 허무맹랑한 소리로 들리겠죠. 제가 진명 씨 입장이었어도 차라리 사다리가 엎어지길 바랄 것 같아요.”
김윤이 기자 yun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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