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산업1부 차장
1984년 6월 15일자 동아일보 7면 머리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보험회사, 잡지사 등에 공채로 취업한 기사 속 졸업생들은 취업설명회에서 “어렵다고 포기 말고 공채에서 실력으로 뚫어라” “돈 없고 배경 없어도 공채 붙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사회에 진출하는 가장 크고 넓은 관문이었던 기업 공채. 기업당 많으면 1만 명 이상, 적어도 수백 명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공급하던 한국 고용시장의 대동맥이었다.
몇 년 전부터 하나둘 폐지돼 온 기업 공채는 이제 남은 곳을 세는 게 빠를 정도로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기업들은 유연하게 조직을 운영하고 현장 맞춤형 인재를 뽑기 위해 직무 중심 수시채용이 더 낫다고 한다. 높은 최저임금, 까다로운 해고, 비정규직 제한 등 경직된 고용 규제 부담이 크다 보니 웬만큼 매출과 이익이 늘지 않고서는 사람 한 명을 더 뽑기가 쉽지 않다.
수시채용이 효율적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고 대규모 공채가 사라져야 할 구시대 유물일까. 아니다. 가파른 성장세로 인재가 부족한 정보기술(IT) 기업들은 저인망식 공채에 나서고 있다. 신입 공채를 연 2회로 늘린 네이버, 상반기 인턴-하반기 공채에 나서는 카카오, 특별 채용과 공채를 동시에 진행하는 넥슨 등이 그렇다.
저성장이 뉴노멀인 지금, 모든 기업이 스타트업처럼 폭발적으로 성장할 순 없다. 그렇다면 적어도 발목이라도 잡지 말아야 한다. 현실은 어떠한가. 일본 최대 유통기업 ‘이온’이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을 제치고 현지에서 채용 1위 기업에 오를 때 국내 유통 대기업들은 대형마트 출점 제한, 의무휴업 규제에 가로막혔다. 치고 나가야 할 때 성장세가 꺾이면서 결국 일부는 올해 공채 폐지 대열에 합류하게 됐다. 중소기업 상속세율을 50% 인하하면 일자리가 최대 26만 개 창출될 것이라는 중소기업중앙회 보고서가 무색하게 가업상속 공제는 조건이 까다롭고 한도가 낮아 실익이 거의 없는 제도라는 비판을 받는다.
일자리 창출이 최고의 가치라면 경제정책의 해답은 간단하다. 공채든 수시든 모든 기업이 1명이라도 더 뽑을 수 있게 규제는 풀고 모든 가용 정책을 동원해 취업 바늘구멍을 넓힐 고민을 해야 한다. 채용 확대 여력이 없어 공채 문을 닫는 기업들을 먼 산 보듯 뒷짐 지며 바라볼 때가 아니다. 일자리가 절실한 청년들을 생각하면 코로나19 확산 등 어려운 환경을 탓하는 핑계는 직무유기다.
이상훈 산업1부 차장 sang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