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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홍의 스포트라이트]IOC와 ‘올림픽 일병 구하기’

입력 | 2021-04-02 03:00:00


일본 도쿄에서 한 시민이 마스크를 쓴 채 도쿄 올림픽 상징물 앞을 지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기세가 꺾이지 않으면 일본 국내 관중들의 올림픽 입장도 상당히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도쿄=AP 뉴시스

이원홍 전문기자

올림픽을 둘러싼 최근 상황을 보면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빗대어 ‘올림픽 일병 구하기’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적진에 있는 아군 병사를 구출하는 내용의 그 영화에서처럼 요즘 올림픽은 여러 힘겨운 상황에 둘러싸여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전 세계적인 확산이 올림픽을 위협하고 있지만 그에 앞서 올림픽의 고비용화, 젊은 세대들의 외면도 문제였다.

최근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와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7월 개최 예정인 도쿄 올림픽에 해외 관중을 들이지 않기로 결정했다. 일본 내의 관중을 어느 정도 수용할 것인지는 아직 논의 중이다.

최소한 두 가지는 분명해졌다. 첫째는 일본이 주장해 왔던 ‘완전한 형태의 올림픽’은 무산됐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은 강행된다는 것이다.

관중 없이 올림픽을 치르는 것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IOC 내부에서 반대했던 내용이다. 올림픽은 세계인이 한데 모여 즐기는 축제이기에 관중 배제는 올림픽 정신에 어긋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데 해외 관중은 물론이고 코로나19가 극심해질 경우 자국 관중도 배제한 채 올림픽이 열릴 판이다.

일본으로서는 막대한 돈을 들이고도 올림픽을 취소하느니 불완전한 형태로라도 개최하는 것이 여러모로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IOC의 내부 기류는 왜 바뀌었을까. 그들에게 올림픽 정신보다는 올림픽 생존 자체가 더 시급해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코로나19 확산이 지속되고 도쿄 올림픽이 열리지 못한다면 불과 6개월 뒤에 열리는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도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하지 못할 것이다. 올림픽 연쇄 취소를 걱정하는 IOC로서는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이 열릴 수 있다는 근거를 남겨야만 하는 것이다.

관중 없이 올림픽을 치르려는 데에는 TV 중계에 대한 믿음이 있다. IOC 수입의 73%는 올림픽 중계권료다. 주관방송사인 미국 NBC는 도쿄 올림픽 중계권료로 1조3000억 원을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림픽이 개최되는 한 관중이 없어도 주 수입원은 남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잡음이 계속되면 장기적으로 TV 중계권료도 줄어들 것이 뻔하다.

이를 의식한 IOC는 3월 총회에서 ‘어젠다 2020 +5’라는 개혁카드를 꺼내 들었다. ‘어젠다 2020’은 개최 비용을 줄이기 위한 내용을 담아 7년 전에 마련됐다. 이번에는 ‘어젠다 2020’을 바탕으로 ‘올림픽의 독창성과 보편성 강조’ ‘지속가능한 올림픽 육성’ ‘디지털 연계 강화’ ‘수입 모델 개선’ 등 15개 권고안을 새로 만들었다.

올림픽 고유의 매력 및 올림픽이 인류의 보편가치를 위해 애쓰고 있다는 점을 계속 내세우는 한편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중계 기법과 수익 모델을 개발해 더 많은 관심을 끌고 수입도 늘리자는 것이다. 첨단 기법을 활용한 중계 기술을 개발하고, 젊은층을 끌어들이며, 선수들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강화해야 한다는 등의 구체적 방침까지 마련됐다.

관중보다는 미디어 중계 강조, TV 중계권료 의존 탈피, 젊은층 끌어안기, 스타 만들기 등을 포함한 이 내용들은 현재의 위기에 대한 맞춤처방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진정 올림픽을 구원할 수 있을까.

코로나19 확산 속에 도쿄 올림픽은 여전히 불안과 의혹 속에 추진되고 있다. 만일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 코로나19로 인해 문제가 발생한다면 일본과 IOC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사람들을 위험에 몰아넣었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는 일본뿐 아니라 IOC의 신뢰에 대해 심각한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도쿄 올림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IOC는 이미 진정성을 의심받아 왔다. 세계 여론에 떠밀려서야 올림픽을 연기했고 이후에도 대회 축소 등 다양한 대안을 마련하기보다는 강행을 추구했다. 설사 이번 올림픽이 탈 없이 끝난다 하더라도 IOC가 인류의 보편가치를 위하기보다는 하나의 이익집단으로서 행동한다는 인식은 남게 될 것이다. 이러한 신뢰의 실추를 극복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각종 ‘올림픽 구하기 처방’도 한낱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이번 처방에 IOC 자체에 대한 개혁 내용이 빠진 것이 아쉽다.


이원홍 전문기자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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