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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마니아’ 의사가 6년째 매일 저녁 와인 마시는 이유가…”

입력 | 2021-04-02 14:19:00

‘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시즌2




《베스트 닥터라 불리는 의사들은 건강을 어떻게 관리할까요.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자기만의 건강법을 만들어나가는 의사들을 찾아 소개합니다. 2019년에 이어 ‘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시즌2를 시작합니다.》

6년째 매일 와인 세 잔을 마시며 체중을 조절한다는 이영호 한양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와인 강사 자격증을 보유한 와인 전문가다. 이 교수가 병원 근처 단골 와인 카페에서 와인을 즐겁게 마시는 방법을 얘기하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매일 저녁에 와인 세 잔은 반드시 마신다. 지극한 와인 사랑이다. 이영호 한양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60) 이야기다. 와인 세 잔이면 3분의 1병 혹은 절반 정도 양이다. 이 교수는 이를 “6년째 지속하고 있는 건강 습관”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백혈병 소아암 분야에서 꽤 이름이 알려진 의사다. 현재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보건복지부 제대혈위원회 위원장이기도 하다.

이 교수는 원래 소주 마니아였다. 매주 3, 4회 소주를 거나하게 마셨다. 그때도 와인을 마시기는 했다. 단지 와인은 수많은 술 중 하나였을 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마시는 빈도도 기껏해야 한 달에 한 번 정도. 그랬던 음주 습관이 바뀌었다. 지금은 소주를 한 달에 한 번 정도 마신다.

소주를 버리고 와인을 택한 이유를 물었다. 이 교수는 “오래 건강하게 술을 마시고 싶어서”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와인 덕분에 건강 체질이 됐다”고 했다. 이른바 ‘와인 건강법’이다.

● 와인을 마신 후 몸이 달라졌다
폭음하던 시절 이 교수에게는 알코올성 간염 증세가 있었다. 와인을 마신 후로 폭음이 줄었다. 가장 먼저 이 증세가 사라졌다. 나아가 체중 조절에도 도움이 됐다.

과거에는 폭음을 하면 다음 날 ‘해장’을 위해 폭식했다. 2, 3회 술을 마시면 체중이 2~3㎏ 불었다. 식사량을 줄여 체중을 줄여봤자 술을 마시면 다시 늘었다. 지금은 지겨운 체중 증감의 무한 반복에서 해방됐다. 와인을 마시기 시작한 6년 전부터 체중이 500g 이상 변화한 적이 없다. 완벽하게 체중을 조절하는 셈이다.

운동량을 늘린 걸까. 그건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매주 1, 2회 동네 공원에서 4㎞ 정도 걷는다. 출퇴근할 때는 가급적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이런 습관은 변하지 않았다. 이 교수는 “와인을 마신 후 식습관이 변한 게 체중 조절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와인은 맵고 짠 자극적인 음식과 어울리지 않는다. 와인을 제대로 음미하려면 함께 먹는 음식도 담백해야 한다. 이 때문에 덜 맵고 덜 짠 식단으로 바꿨다. 싱거운 김치찌개를 먹고 고추장을 넣지 않는 봄나물 비빔밥을 먹는다. 특히 멀건 봄나물 비빔밥은 화이트와인과 잘 어울린단다.

미각도 살아났다. 예전에는 음식이 나오면 그냥 먹기 바빴는데, 요즘은 향을 먼저 느끼고 천천히 맛을 음미한다. 이 교수는 “아내와 함께 음식 평도 하고 대화를 하면서 식사를 하다 보니 부부 사이도 좋아졌다”고 했다.

● 와인의 건강학

프랑스인들이 육류를 많이 먹는데도 다른 서양인보다 심장병에 덜 걸린다는 말이 있다. 이를 ‘프렌치 패러독스’라 하는데, 의학적으로는 찬반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레드 와인에 폴리페놀이나 레스베라트롤 같은 항산화 물질이 다량 들어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물질들은 항암 효과를 내고 혈압을 떨어뜨리며 당뇨병 환자의 경우 몸에 좋은 콜레스테롤인 HDL(고밀도 지질단백질)을 높여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와인에 들어있는 이 성분들이 실제 인체에 작용해 이런 효과를 내는지에 대한 의학적 데이터는 부족한 편이다. 이 교수는 “앞으로 과학적인 연구가 더 필요한 대목”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와인으로 체중을 관리하는 것은 의학적으로 타당하다. 이 교수는 와인이 비만을 막아준다는 해외 연구결과를 소개했다. 이를테면 ‘엘라그산’이라는 식물성 페놀이 지방간과 비만을 막아주는데, 오크통에서 숙성한 와인에는 이와 유사한 ‘엘라그타닌’이 존재한다. 오크 숙성이 잘된 와인을 마시면 지방간과 비만 위험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와 별도로 미국 퍼듀대 연구팀의 연구에 따르면 레드 와인에 비만을 억제하는 물질인 피세아타놀이 들어있다. 이 물질은 지방세포가 생기거나 성장하는 것을 억제한다.

● 와인 전문 강사 자격증 따다
소주 마니아가 와인 마니아로 바뀐 계기는 6년 전이다. 사촌동생이 와인 교육 프로그램을 추천했다. 술을 좋아하니 재미로 참여했다.

처음엔 와인의 다양한 맛에 끌렸다. 때론 시큼하고 때론 달달했다. 와인마다 풍기는 향도 달랐다. 늘 같은 맛에 화학 물질 냄새가 나는 소주와 달랐다. 매번 다른 사람과 새로운 만남을 즐기는 기분이랄까. 와인에 호감이 생기자 조금 더 깊이 알고 싶어졌다.

당시 이 교수가 접한 프로그램은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가 제공하는 것이었다. WSET는 와인과 관련된 교육 및 강사 자격증을 발급하는 글로벌 기관으로 세계 70여 개국에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난이도에 따라 1~3레벨로 나뉜다.

와인에 빠진 후 이 교수는 3레벨에 도전했다. 필기시험을 준비하면서 와인 관련 정보를 빼곡하게 기록했다. 분량이 150쪽을 넘었다. 이 교수는 의대생 때 그랬던 것처럼 열심히 외웠다. 필기 시험은 한 번에 통과했다.

하지만 향을 맡고 와인을 완벽히 구별해 내야 하는 실기 시험은 녹록하지 않았다. 두 번이나 떨어졌다. 88종의 와인을 작은 병에 담아 향을 구별해내는 연습을 하는 ‘키트’를 샀다. 향을 맡고 또 맡았다. 지난해 1월, 마침내 세 번째 실기 시험에 합격하면서 레벨3 강사 자격증을 획득했다. 의학과 관련이 없는 이 와인 강사 프로그램에 왜 몇 년 동안 매달린 것일까.

“알고 마시면 그만큼 느끼는 것도 많아집니다. 많은 사람과 즐겁게 술을 마실 수도 있고, 더 건강해지죠. 은퇴한 후에는 와인 강의하면서 제2의 인생을 살렵니다.”



왕초보를 위한 ‘건강하게 와인 잘 마시는 법’

건강하게 와인을 마시는 법은 없을까. 와인 초보자는 어떤 와인을 선택해야 할지부터 고민에 빠진다. 이영호 한양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망설이지 않아도 된다. 마트에서 파는 2만 원 내외 와인이라면 좋다”고 말했다.

이런 와인의 경우 병을 따면 바로 마셔도 된다. 와인에 따라 코르크 마개를 따고 한두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것도 있지만, 마트에서 파는 와인은 그런 절차를 안 거쳐도 된다.

잔에 와인을 따른 후에는 먼저 향을 맡을 것을 이 교수는 권했다. 그 다음에 잔을 슬슬 돌리며 와인과 공기가 섞이게 한다. 한 모금 마셔보고 좀 떨떠름하다 싶으면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와인은 어느 정도 마시는 게 적당할까. 과음은 당연히 좋지 않다. 이 교수는 혼자 마실 경우 3분의 1병에서 절반까지가 좋다고 했다. 먹다 남긴 와인을 보관하는 요령도 알아둬야 한다. 무엇보다 병 안에 들어있는 산소를 제거하는 게 중요하다. 와인과 산소가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면서 신맛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코르크 마개를 거꾸로 집어넣는 게 좋다. 그 다음에는 냉장고나 김치냉장고에 보관한다. 이때 병은 반드시 세워야 한다. 병을 눕히면 와인과 공기가 접하는 면적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관한 와인은 3, 4일 후에도 맛이 변하지 않는다. 다만 이후로는 신맛이 강해질 수 있다. 심할 경우 식초와 같은 맛이 난다.

보관은 차게 하지만 다시 꺼내 마실 때는 실온과 비슷한 온도로 올려줘야 한다. 이 교수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레드와인은 13~15도, 화이트와인은 8~10도일 때 맛있게 즐길 수 있다. 따라서 냉장고에서 와인을 꺼냈다면 30분 후에 마시는 게 좋다.

와인을 마신 후 생기는 두통은 이유가 다양하다. 와인 속에 들어있는 방부제가 원인일 수 있지만 와인이 발효하는 과정에서 생성된 아세트알데히드나 히스타민 성분이 원인일 확률이 높다. 레드 와인의 경우 타닌 성분이 혈관을 확장시켜 두통을 유발할 수도 있다. 와인을 마시면서 물을 자주 마셔주면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