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윤에 공수처장 관용차 제공
“검찰총장이나 서울중앙지검장이 자신의 관용차로 일요일에 피의자를 검찰청사로 데려와 조서도 남기지 않는 면담을 했다면 검찰은 아마 문을 닫았을 것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김진욱 처장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의혹 사건의 피의자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관용차에 태워 에스코트했다는 논란이 일자 검찰 관계자는 이렇게 지적했다. ‘전례 없는 황제 조사’ 논란에 공수처장 해임 사유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김 처장은 지난달 7일 김 전 차관 불법 출금 사건을 수원지검에 재이첩하기 전 이 지검장을 면담했다. 양측의 면담 사실은 같은 달 1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야당인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의 폭로로 세상에 알려졌는데, 당시 이 지검장이 BMW 차량을 타고 와 김 처장이 보낸 관용차인 제네시스로 갈아타고 공수처로 들어간 사실이 폐쇄회로(CC)TV 영상을 통해 1일 추가로 드러났다. 김 처장은 이 지검장과 그의 변호인을 65분간 만나 면담 및 기초 조사를 했다고 밝혔으나 조서도 남기지 않았다.
이 지검장이 공수처 청사 건물 안으로 들어간 과정을 두고도 의혹이 일고 있다. 정부과천청사에는 이 지검장이 출입한 전산상 기록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도 이 지검장의 불법 출입 의혹에 대한 고발 사건의 증빙자료로 이 지검장의 출입 장면이 담긴 CCTV 영상을 검찰에 제출하면서도, 이 지검장의 출입 기록은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에선 “이 지검장이 정식 출입 절차 없이 누군가가 공수처 내부 출입 게이트를 열어준 거라면 청사 관리 주체의 의사에 반해 건조물 침입이나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 소지가 있다”고 했다. 검찰은 공수처에 청사 내 CCTV 영상을 보존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처장은 대변인실을 통해 이 지검장의 에스코트 논란에 대해 “보안상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앞으로 사건 조사와 관련해 공정성 논란이 제기되지 않도록 더욱 유의하겠다”고 답했다. 통상 오전 9시경 출근하던 김 처장은 이날 평소보다 1시간 30분가량 이른 시간에 출근하고 점심은 청사에서 도시락으로 해결했다. “논란을 의식해 취재진을 피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김 처장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피의자 변소를 일방적으로 들어주고 보고서도 제대로 남기지 않으면서 ‘보안’을 언급하는 건 무엇을 위한 보안이냐”는 비판이 나왔다. 참여연대는 이날 논평을 내고 “공수처는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권력으로부터 실질적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며 “공수처장이 부적절한 처신으로 공정성 논란을 자초했다”고 비판했다. 보수 성향 변호사단체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은 “수사 편의 제공은 불법적인 특혜로, 직권남용이나 청탁금지법 위반에 해당할 여지가 상당하다”며 김 처장을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순천지청장 출신의 김종민 변호사는 페이스북에 “결단을 내리고 (김 처장이) 사퇴하는 게 낫다”고 했다.
신희철 hcshin@donga.com·장관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