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부동산원 통계 기준 아파트값이 지난해 44.93% 올라 전국적으로 상승률 1위를 차지한 세종시 아파트.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오늘(5일)부터 전국의 기초자치단체가 일제히 개별공시지가를 공개한다. 공시가격 산정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한 번 뜨거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개별공시지가의 산정기준이 되는 올해 표준지 공시지가가 이미 10.37% 상승한 탓이다. 이는 2007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여기에 제주도와 서울 서초구가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부실 산정됐다며 5일 항의성 기자회견을 연 데다 여권 지자체장들마저 공시가격을 둘러싼 반발 대열에 가세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틀 앞으로 다가온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는 물론 1년 뒤에 있을 대통령 선거에도 공시가 논란이 적잖은 여파를 미칠 것으로 분석된다.
● 또 터진 공시가 폭탄…이번엔 개별공시지가
오늘(5일)부터 26일까지 전국 226개 기초지방자치단체별로 개별공시지가가 공개된다. 대상은 전국의 3398만 필지다. 개별공시지가는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12월 제시한 ‘2021 표준지 공시지가’를 바탕으로 가격을 산정한 후 시·군·구 부동산평가위원회 심의를 거쳐 시·군·구청장이 결정, 공시한다.문제는 올해 표준지 공시지가가 2007년(12.4%) 이후로 가장 높은 10.37%(전국 평균)나 상승했다는 점이다. 다른 공시가격(공동주택, 단독주택)과 마찬가지로 지난해 부동산 경기 활황에 따라 가격이 크게 오른 데다 공시가격 현실화율이 대폭 높여진 게 직격탄이 됐다. 국토부에 따르면 표준지 공시지가 현실화율은 68.4%로 지난해보다 2.9%포인트 올랐다. 이는 단독주택(2.3%)나 공동주택(1.2%) 현실화율 상승률을 웃도는 수준이다.
국토부가 지난해 공개한 ‘2021년 표준지 공시지가(안)’에 따르면 시도별 상승률을 보면 세종특별자치시가 12.38%로 가장 컸고, 서울(11.41%) 광주(11.39%) 부산(11.08%) 대구(10.92%) 등이 뒤를 이었다. 경기(9.74%) 전남(9.67%) 등 나머지 지역도 모두 7~9%의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토지용별로는 주거용(11.8%)과 상업(10.14%)가 두 자릿수 상승폭을 기록했고, 농경지(9.24%) 임야(8.46%) 공업지(7.56%) 등도 7% 이상 올랐다.
앞으로도 표준지 공시지가는 큰 폭으로 오를 가능성이 크다. 국토부가 2028년까지 표준지 공시지가의 현실화율을 90% 수준으로 맞추기로 하고, 매년 3%포인트 정도 현실화율을 높일 방침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토지 공시가격이 높아지고, 토지 관련 세금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한편 올해 개별공시지가를 열람하려면 토지가 위치한 지역의 기초 지자체 홈페이지나 관할구청 세무과, 읍·면·동 행정복지센터(민원실) 등을 이용하면 된다. 또 이의 등 의견이 있다면 의견서를 작성해 26일까지 제출해야 한다. 우편과 팩스를 이용하거나 구청·주민센터 등을 직접 방문해 신청해도 된다.
● 현실화되는 부작용…‘서울 주민세’된 종부세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63아트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 아파트 단지가 짙은 안갯속에 묻혀있다. 2021.3.28 뉴스1 © News1
정부는 올해 서울에서 종부세 대상인 공시가 9억 원 이상 공동주택 비율이 16%라고 공식 발표했다. 하지만 아파트로 한정하면 이 비율이 약 25%까지 높아졌다.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이 국토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내 공시가 9억 원 이상 아파트는 모두 40만6167채였다. 서울 전체 공시대상 아파트(168만864채)의 24.2%에 해당한다. 이 비율은 2019년에는 12.37%, 2020년에는 16.8%였다.
전국 종부세 대상 아파트(51만5084채)에서 서울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78.9%에 해당한다. 이에 따라 종부세가 사실상 서울을 겨냥한 세금이 아니냐는 지적마저 나온다.
여기에다 다주택자에 대해선 공시가 기준액이 낮아지는 점을 고려하면 종부세 대상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종부세는 다주택자의 경우 공시가 합산액이 6억 원 이상인 경우부터 부과된다. 국토부에 따르면 다주택자가 지난해 주택분 종합부동산세 고지세액(1조 8148억 원) 중 82%인 1조4960억 원을 부담했다. 다주택자 보유 매물로 종부세 대상에 포함해야 하는 공시가 6억~9억 원 주택도 적잖을 수 있다는 뜻이다.
● 지자체 반발 잇따라
이처럼 공시가 급등으로 인한 각종 논란이 거세지자 민원인들과 직접 접촉해야 하는 지자체장들의 반발도 잇따르고 있다. 제주도와 서울 서초구는 5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자체조사 등을 통해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부실 산정됐다는 주장마저 내놓았다.서초구에 따르면 서초구내 공동주택 12만 5000여 채 가운데 지난해 거래가 있었던 4000채를 조사한 결과 208채(5%)가 현실화율이 90%를 넘었다. 일부에선 공시가가 전년 대비 2배 넘게 오른 곳도 있었다. 오랫동안 거래가 없다가 지난해 실거래가가 나오면서 이를 토대로 공시가를 산정하면서 생긴 문제다. 서초구는 이에 대해 정부가 2030년에 달성하겠다는 목표치를 이미 넘어섰고, 이는 현실화율 오류라고 주장했다.
제주도는 공동주택 7채 중 1채에서 공시가격 오류가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같은 동에서 한 라인은 공시가가 전년보다 11% 넘게 내린 반면 옆 라인은 6.8% 오르거나 같은 단지에서 동별로 공시가 상승과 하락이 갈리거나, 상승률이 30% 이상 차이 났다는 것이다. 제주도는 또 공동주택 11곳은 주택이 아닌 펜션이었다며 현장조사 부실 가능성마저 제기했다.
여기에 여권 지자체장이 운영하는 지자체들도 거들고 나서면서 파장은 더욱 확산되는 모양새다. 현 정부와 여당이 ‘안방’처럼 여기는 세종시가 대표적이다.
세종시는 1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세종시내 다수 아파트 단지에서 집단 이의 신청을 준비하는 등 많은 사람들이 보유세 급증에 대한 불안과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며 “주민 여론을 수렴해 지난달 26일 공시가격을 낮춰달라는 의견을 한국부동산원과 국토교통부에 각각 제출했다”고 밝혔다. 세종시의 경우 공시가격 급등으로 6억 원 초과 아파트가 지난해 442채에서 올해 2만 342채로 50배 가까이 늘어났다.
● 깊어지는 정부의 고민
상황의 심각성에 여당도 움직임에 나섰다. 박영선 서울시장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공시가격 9억 원 이하 주택에 대해 (공시가격) 연간 상승률이 10% 수준을 넘지 않도록 조정하겠다”고 공약했다. 홍익표 민주당 정책위의장도 이에 화답하듯 “당에서 공정 과세와 급격한 인상을 경계해야 한다는 점을 모두 고려해 합리적인 조정 방안 검토에 들어갔다”고 밝혔다.이쯤 되자 정부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윤성원 국토부 1차관은 1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내년에도 공시가격 6억 원을 넘어서는 주택이 많이 나올 경우 세금 부담을 어떻게 감면해 줄지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을 정도다. 윤 차관의 발언이 파장을 일으키자 국토부는 몇 시간 뒤 설명자료를 내고 “관계 부처 간 논의된 바 없는 내용”이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내년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라는 더 큰 정치적 이벤트를 앞둔 상황에서 공시가 논란을 그대로 덮어둘 수만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부동산 정책 실패에 따라 멀어져간 민심을 되돌릴 만한 카드로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