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임수 경제부 차장
겉으로 드러난 숫자만 보면 한국 경제를 할퀸 코로나19의 상처는 아물고 있다. 지난달 수출(538억3000만 달러)은 1년 전보다 16.6% 늘어 3월 기준으로 역대 최고를 달성했다. 자동차·반도체 등 수출 주력 업종뿐 아니라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던 중간재까지 모두 수출 반등에 성공했다.
5개월째 증가세인 수출 훈풍에 힘입어 산업활동도 개선되고 있다. 2월 산업생산은 8개월 만에 최대 폭(전월 대비 2.1%)으로 늘어 코로나19 사태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기업들의 체감경기를 보여주는 기업경기실사지수(BSI)도 9년 8개월 만에 가장 높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 3월 대부분 지표들이 우상향의 방향을 가리키며 회복해 희망의 깜빡이가 켜져 있는 모습”이라고 자평했다.
꿈틀대는 경기를 다시 얼어붙게 할 악재는 도처에 있다. 글로벌 자동차 공장들을 셧다운시킨 ‘반도체 대란’은 한국 기업을 덮쳤다. 차량용 반도체를 구하지 못한 현대차는 7∼14일 울산1공장의 가동을 중단한다. 미중 무역분쟁에 이어 원자재 가격 급등도 수출 걸림돌이 되고 있다.
가장 큰 불확실성은 코로나19 재확산 여부다. 백신 접종을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인구 대비 접종률은 1.8%대로 세계 100위 밖이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한국은 코로나19 초기 방역에 성공했지만 백신 접종 속도가 느려 경제적 위험(economic pitfalls)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곳곳이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을 지뢰밭인데 사령탑이 “희망의 싹”만 보고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최근 경기지표 반등은 정부가 잘해서가 아니라 어려운 여건에서도 기업들이 분투한 덕분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문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상공의 날(3월 31일) 기념식에 참석해 기업과의 ‘정례 협의’를 제안했다는 점이다. 이튿날 청와대 참모회의에서 기업인들과 소통 협력을 재차 당부했다.
정부가 할 일은 안팎의 위험을 살피고, 기업을 옥죄는 규제 족쇄를 하나라도 더 풀어 기업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다. 그동안 외면해온 기업에 화해 제스처를 보낸 게 선거를 앞둔 정치적 쇼에 그친다면 곤란하다. 이번 소통 협력 약속도 립서비스에 불과하다면 그나마 온기를 보이는 경제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