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라 요기요 마케터
‘굿즈(goods)’는 테마가 있는 기획 상품이다. 특정 브랜드나 이벤트, 캐릭터를 활용해 만든 소품이다. 종류는 상상 이상으로 다양하다. 굿즈 티셔츠를 입고 굿즈 에코백을 메고 출근해 굿즈 달력을 본 뒤 굿즈 컵에 커피를 마시고 굿즈 펜을 들고 굿즈 노트에 메모를 하는 생활도 가능하다. 엄밀히 말해 굿즈는 한국에서 본래 영어 단어의 의미와 다르게 쓰이고 있다. 그러나 고치기엔 늦은 것 같다. 너무 많이 쓰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굿즈는 그냥 판촉물이었어. 언제부터 이렇게 중요해졌지?” 소비재 회사에서 10여 년간 굿즈를 만들어 온 30대 마케터가 말했다. 궁금해서 2004년부터의 ‘굿즈’ 검색량 트렌드를 살폈다. 잔잔하던 검색량 그래프는 2016년 하반기부터 요동쳤다. 그 파동의 근원은 ‘방탄소년단’과 ‘알라딘’이었다.
최근 굿즈 폰케이스를 살까 고민 중이라는 20대 중반 막내에게 굿즈에 대해 물었다. “제게 굿즈는 ‘나 이런 걸 좋아해. 이런 곳에 다녀왔어’ 하는 기록 같아요. 여권에 도장 찍는 느낌이랄까?” 소비자가 자기 삶에 굿즈로 도장을 찍고 싶은 것처럼 기업도 소비자의 마음에 도장으로 남고 싶다. 소비자와 기업 사이에서 굿즈가 태어나는 이유다.
기업에도 굿즈는 좋은 상품이다. 이윤이 높고 효율성이 좋다. 대부분의 굿즈는 기성품에 도안을 입히는 방식이라 제조 원가가 저렴하다. 스티커는 일주일, 에코백은 특수 사양이라도 2개월이면 충분히 만들 수 있다. 반면 일반 제품은 아무리 간단해 보여도 숙련된 실무자 팀이 최소 3개월 이상 공들여야 한다. 노동 소요의 양 자체가 다르다.
거대 이상이 사라진 시대, 요즘 2030들은 혁명이나 엄청난 성공보다는 나만의 쿨하고 귀여운 이야기를 꿈꾼다. 그러니까 굿즈면 충분하다. 브랜드란 곧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고, 기업은 흔쾌히 그 이야기를 예쁜 현물로 구현해 손에 쥐여준다. 때로는 머그잔, 때로는 티셔츠의 모양으로.
굿즈가 너무 많아지다 보니 쓸데없는 상품이 너무 많이 만들어져 환경 파괴로 이어질까 걱정하는 분도 계신 듯하다. 발 빠른 회사는 이에 맞춰 카카오톡 배경 같은 ‘디지털 굿즈’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것도 반응이 좋다고 한다. 그야말로 굿즈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