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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미륵사 터 직접 찾았다… 더 친절한 번역서로 보답하려고”

입력 | 2021-04-06 03:00:00

‘삼국유사’ 번역 김원중 교수, 14년 만에 개정판 출간
일연 발자취 따라 현장 답사… 현장감-친근감 살리려 노력
“책 들고 여행지 찾아가보길”




김원중 단국대 한문교육과 교수는 “올 6, 7월경 ‘사기’ 연구서를 출간할 예정이다. 사기 시리즈(민음사)는 그동안 번역한 고전 중에서도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삼국유사 기이(紀異)편 제2에는 백제 30대 무왕(580∼641)이 못가에 미륵사를 세우는 장면이 나온다. 고려 후기 승려 일연(1206∼1289)은 무왕이 미륵사를 세우기 위해 “산을 허물고 못을 메워 평지로 만들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절이 얼마나 크기에 산까지 허물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찰나, 역자가 달아 놓은 각주가 독자의 궁금증을 풀어준다.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에 미륵사 터가 있는데 4m 높이의 당간지주(부처나 보살의 공덕을 나타내는 깃발을 걸기 위해 세운 기둥)가 남아 있어 그 규모를 유추할 수 있다.”

판과 쇄를 거듭하며 10만 부 이상 팔린 김원중 단국대 한문교육과 교수 번역의 ‘삼국유사’(민음사) 개정판(사진)이 14년 만에 나왔다. 김 교수는 2년에 걸쳐 원고를 다시 손질하면서 현대 독자들에게 친숙한 표현으로 바꾸고 사기, 삼국지 등 삼국유사에 인용된 중국 문헌의 최신 연구 성과를 반영했다. 그를 지난달 25일 서울 강남구 민음사에서 만났다.

“독자들의 오랜 사랑에 친절한 번역서로 보답하고 싶어 현장 답사를 통해 현장감을 불어넣고자 했습니다. 우리말의 결을 살리기 위해서도 노력했죠.”

그는 개정판을 준비하며 경북 경주와 충남 논산 등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장소를 답사했다. 2007년 첫 번역본을 내놓을 땐 하지 못한 작업이다. 이를테면 가락국 설화에 등장하는 고대 가요 ‘구지가’를 소개하는 대목에선 배경이 되는 경남 김해 수로왕릉의 ‘천강육란석조상(天降六卵石造像·가락국 설화에 나오는 6개 알과 9마리 돌거북을 묘사한 1976년 작 조각상)’에 대한 설명을 곁들였다. 의상법사가 강원 양양 낙산사에서 관음보살을 만나는 장면에선 이곳의 원통보전(圓通寶殿·관음보살을 모신 전각)을 소개한다.

김 교수는 삼국유사에는 직접 현장을 찾지 않으면 쓸 수 없을 정도로 자세히 서술된 부분이 많다는 걸 실감했다고 한다. 자신의 답사 기록을 각주에 담는 게 원문을 해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 이유다. 그는 “삼국유사를 챙겨 들고 여행지를 찾아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 보는 것도 즐거운 독서 경험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쉴 새 없이 새로운 번역서와 번역 개정판을 출간하는 걸로 유명하다. 올 2월엔 9권짜리 ‘김원중 교수의 명역 고전 시리즈’(휴머니스트)를 5년 만에 완간했다. 이 중 ‘논어’는 3년, ‘손자병법’은 4년 만에 개정판을 냈다. 그의 번역서 중 대표작인 ‘사기열전 시리즈’(민음사)도 2011년 완간 후 두 차례 개정했다. 김 교수는 “번역이 불완전해서가 아니라 고전을 최신의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소명으로 생각하기에 성실하게 작업하려고 한다. 5년마다 개정 작업을 하는 걸 원칙으로 삼지만 잘 안 된다”고 말했다.

김 교수에게 삼국유사는 민족의 자부심과 동의어다. 그는 일연이 우리 역사를 중국과 대등하게 서술한 점에 주목한다. 예컨대 기이편 제1에서 일연은 “단군왕검은 당요가 즉위한 지 50년이 되는 경인년에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이라고 불렀다”고 썼다. 중국 연호를 사용하지 않고 수평적으로 기술했다는 것. “삼국유사는 한반도 고대사를 담은 극소수의 문헌 중 하나입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도 단군 신화를 다루진 않았지요. 우리 민족의 뿌리를 아는 데서 역사에 대한 주체성과 자부심이 피어납니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