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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정하지만, 더 멀리 가 닿은[김학선의 음악이 있는 순간]

입력 | 2021-04-07 03:00:00

<11> 파란노을-아름다운 세상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이 음악은 지금껏 ‘음악이 있는 순간’에 쓴 음악 가운데 가장 무명에 가까울 것이다. ‘무명’이란 표현이 무례하지 않을 정도로, 음악을 전문적으로 듣고 다루는 국내 음악 관계자들에게도 이 이름은 낯설다. 파란노을, 영어로는 ‘Parannoul’이라고 쓴다. 굳이 영문을 병기하는 건 파란노을이 외국에서 더 먼저 반응이 왔기 때문이다.

새로운 음악을 찾기 위해 레이트유어뮤직(RateYourMusic)이란 사이트를 자주 이용한다. 이름 그대로 전 세계 음악 애호가들이 음반에 평점을 매기는 사이트다. 이용자들의 개인 평점으로 평균을 내서 순위를 정하는데, 2021년에 나온 수많은 음반 사이에서 파란노을, 아니 Parannoul의 음반 ‘To See the Next Part of the Dream’이 현재 4위에 올라 있다. 무려 3300명이 넘는 이용자가 이 음반에 점수를 매겼고, 이 숫자는 한국에서 파란노을을 아는 사람의 숫자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파란노을의 음악은 현재 스트리밍 사이트에선 들을 수 없다. 그 대신 밴드캠프와 유튜브에 음악을 올려 누구나 들을 수 있게 했다. 밴드캠프는 전 세계 모든 프로·아마추어 음악가들이 음원을 올릴 수 있는 사이트로 무료로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아티스트가 책정한 가격으로 음원을 팔 수도 있다. 이곳에 올라온 파란노을 음악을 먼저 발견한 건 외국인들이었고, 역시 외국 인디 웹진에 먼저 소개됐다.

결정적으로 유력 음악매체 피치포크에서도 파란노을을 리뷰하며 8점이라는 높은 평점을 주었다. 피치포크는 새로운 음악을 발 빠르게 소개하는 걸로도 유명하지만, 평점이 짜기로도 유명하다. 비유를 들자면 방탄소년단이 영화 ‘기생충’이라면, 파란노을은 ‘미나리’에 가깝다. 하지만 정작 파란노을에 대해선 알려진 게 거의 없다. 그가 이십대의 젊은 청년이라는 것, 스무 살이 될 때까지 기타를 잡아본 적이 없다는 것, 이 모든 음악을 집에서 혼자 만들었다는 것 정도를 여기저기 흩어진 정보에서 짐작할 뿐이다.

파란노을이 들려주는 음악은 슈게이징이라는 장르에 속한다. 노이즈와 멜로디의 조합이라고 거칠게 설명할 수 있는, 1980년대 말 등장해 이미 한참 전에 유행이 지난 음악이다. 하지만 이십대의 젊은 음악가는 방에서 만든 철지난 음악을 가지고 새로운 세대와 소통한다. 파란노을 음악이 세계 젊은이들에게 알려진 발화점이 밴드캠프와 유튜브라는 사실도 달라진 시대를 대변한다. 기술적 완성도라는 면에서 파란노을의 음악은 대중가요와 다른 노선을 걷는다. 사운드와 노래는 불안정하게 들리지만 오히려 슈게이징이라는 장르 특성을 잘 이해하고 살려낸 것이기도 하다. 그는 “피해망상, 열등감, 추억팔이, 비적응, 도피, 환상과 환멸, 발악, 가장 보통의 존재, 무기력”이라는 자신이 경험한 부정적 감정을 음악에 솔직하게 담아냈다. “자신을 사랑하라”는 긍정의 메시지도 의미 있지만, 어떤 젊은이들은 이런 감정에 더 반응하기도 한다. 대책 없이 긍정적인 K팝 아이돌의 음악 말고도 다른 감정의 노래가 서울의 한 작은 방에서 시작해 세계와 닿고 있다.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