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도수정 失機 반복한 정부 경제정책 ‘알박기’ 포기해야
박중현 논설위원
조직의 새 수장은 임기 초 문제에 부닥칠 때 ‘전임자 탓’을 하게 마련이다. 탄핵으로 물러난 박근혜 대통령이 봉투를 남겼을 리 만무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이 기술을 현란히 구사했다. ‘일자리 정부’를 표방하고 출범해 소득주도성장을 강하게 밀어붙이던 중 처음으로 경제정책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랬다. 2018년 최저임금이 16.4% 인상되자 취업자 수 증가폭이 전년 31만6000명에서 9만7000명으로 뚝 떨어졌다. 문 대통령은 “오래 계속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경제적 불평등을 확대해 성장 동력을 떨어뜨리고 그와 함께 고용 없는 성장이 계속돼 왔다”고 했다. 무리한 임금 상승으로 서민 일자리가 줄어든 걸 전 정부들 탓으로 돌린 것이다.
2018, 2019년 2년 연속 경제성장률이 2%대로 떨어지면서 두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이야기 속 CEO가 열어본 두 번째 봉투엔 “사람을 바꾸라”는 메모가 들어 있다. 실패의 책임을 물어 대대적 인사를 단행하면서 경영전략을 수정하라는 뜻이다. 현 정부도 개각과 정책 전환이 필요해졌는데 작년 초 시작된 코로나19가 엉뚱한 영향을 미쳤다. 최악의 경제 성적표는 팬데믹의 높은 파고에 묻혔고, 전 국민 재난지원금에 힘입어 지난해 4월 총선에서도 압승했다. 돈을 풀라는 청와대, 여권 요구에 저항하는 척 부응한 홍남기 경제부총리도 자리를 지켰다.
여론에 떠밀렸다곤 해도 그때가 정책 궤도를 바꿀 거의 마지막 기회였다. 그런데 청와대는 ‘공공주도 개발주의자’ 변창흠 국토부 장관을 기용하며 기존 정책기조를 강화했다. 곧이어 변 장관이 사장을 지낸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이 터졌다. 일자리 참사, 증세로 누적된 국민 분노에 도덕성 불신까지 겹친 복합위기 속에서 4·7 재·보궐선거를 치렀다.
세 번째 중대위기를 맞은 조직의 장에게 남겨진 마지막 메시지는 “후임자를 위해 봉투 3개를 준비하라”는 것이다. 돌이키기엔 늦었으니 마무리에 신경 쓰라는 주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대권 도전을 위해 사의를 표한 정세균 국무총리 자리에 홍 부총리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도 이해가 간다.
다만 대통령 임기가 13개월 남은 시점에 정부 대표 싱크탱크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3년짜리 원장으로 실패한 ‘소주성’ 입안자인 홍장표 전 경제수석을 앉히려는 건 어이없는 일이다. 현 정부에서 못 핀 소주성의 꽃이 차기 정부에서 활짝 개화하길 기대하는 것은 부질없는 미련일 뿐이다. 어떤 후임자도 그런 부담스러운 유산은 물려받고 싶지 않을 것이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