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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 없는 전쟁[이은화의 미술시간]〈157〉

입력 | 2021-04-08 03:00:00

잉카 쇼니바레 ‘머리통 두 개를 한 번에 날리는 방법(신사)’, 2006년.


머리 없는 두 사내가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다. 둘 다 빅토리아 시대의 귀족 복장을 하고 있지만 알록달록한 무늬의 천은 지극히 ‘아프리카적’이다. 영국 귀족 남자들이 아프리카 천으로 된 옷을 입고 있는 이유가 뭘까? 작가는 머리 없는 마네킹에 왜 총을 쥐여준 걸까?

나이지리아계 영국인 잉카 쇼니바레는 사진, 설치, 조각, 비디오 등 다양한 매체를 다루지만 화려한 옷을 입힌 마네킹 설치작품으로 가장 유명하다. 작품에 사용된 강렬한 색과 문양의 천을 보면 누구나 의심 없이 ‘아프리카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이것이 바로 작가가 작품을 통해 던지고자 하는 민족 정체성에 관한 중요한 질문이다. 쇼니바레가 사용하는 천은 바틱(Batic)이라 불리는 것으로, 사실 아프리카 고유의 것이 아니다. 인도네시아 전통 천인 바틱은 식민지 시절 네덜란드를 거쳐 영국에서 대량 생산된 후, 다시 네덜란드를 통해 아프리카로 수출됐다. 원래는 네덜란드 상인들이 인도네시아에 내다 팔려고 했지만 기대와 달리 장사가 잘되지 않자 또 다른 식민지인 서아프리카로 방향을 돌린 것인데 그들의 예상은 적중했다. 화려하고 대담한 문양에 대한 아프리카인들의 반응이 뜨거웠고, 이는 곧 아프리카적인 것으로 세계에 인식됐다. 지금도 네덜란드는 아프리칸 바틱 천의 최대 수출국이다. 그러니까 아프리카적인 것으로 알려진 바틱은 근대 식민지배 과정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직물로, 복잡한 역사적 문화적 모순 속에 탄생한 것이다.

이 작품은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전쟁 같은 세상에 대한 풍자이기도 하다. 머리가 없다는 건 이성과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이성적 사고가 아닌 일방적 주장과 맹목적 신념만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갈등과 전쟁은 필연적이다. 작가는 ‘상대와 자신의 머리통을 동시에 날리는 짓이 바로 전쟁’이라고 말한다. 양쪽 모두에게 치명적인 상처와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결국 전쟁에서 승자는 있을 수 없다는 의미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