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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인공지능 화두로… 동시대의 SOS 조명”

입력 | 2021-04-08 03:00:00

연극 ‘싯팅 인 어 룸’ 연출가 장우재
방에 갇혀 관계 맺는 시대 상징
“SF는 극을 담기 위한 도구일뿐… 미래가 좋든 나쁘든 준비는 해야”



연극 ‘싯팅 인 어 룸’에서 쌍둥이 자매 ‘제니’와 ‘지니’를 맡아 1인 2역을 소화하는 신정연 배우. 뒤편의 스크린에는 동생 지니(왼쪽)와 언니가 동시에 등장한다. 장우재 연출가는 “쌍둥이는 분열된 우리 내면의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극단 이와삼 제공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게 연극의 힘이라면 극단 이와삼의 ‘싯팅 인 어 룸’은 꽤 강력한 작품이다. 대학로 이야기꾼으로 소문난 장우재(50·사진)가 쓰고 연출한 이 작품은 팬데믹과 인공지능(AI), 인간성 등의 화두를 객석에 던진다. 그는 ‘동시대성’을 목표로 창작극을 만들고 있다.

11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에서 펼쳐지는 극은 가까운 미래를 다룬 공상과학(SF) 소설과 닮았다. 지난해 제10회 미래연극제에서 서울 마포구 복합문화공간 행화탕에서 처음 선보인 뒤 제20회 월드 2인극 페스티벌에서 최우수작품상, 연출상을 받았다.

장 연출가는 6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얼마 전부터 동시대의 문제들을 한두 마디로 정의하기 힘들었다. 팬데믹으로 모든 게 빨려 들어가듯 큰 변화를 겪는 시점에서 작게나마 2인극을 통해 현재를 조명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제목 싯팅 인 어 룸은 방에 갇혀 관계를 맺는 시대의 단면을 상징한다. 그는 “최근 우리 모두가 각자의 방 안에서 절박한 SOS를 보내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줄거리는 다소 복잡하지만 흥미진진하다. 쌍둥이 자매 제니와 지니는 치명적인 감염병으로 부모를 잃는다. 엄마는 먼저 감염된 아빠를 보살피기 위해 격리를 거부했다가 함께 세상을 떠난다. 이 사연을 접한 대중은 “무책임한 어머니” “죽음을 통한 진정한 사랑”이라며 엇갈린 반응을 쏟아낸다. 10년이 흘러 언니인 제니도 죽고 홀로 살아가던 지니는 어느 날 언니의 전 남자친구 리언으로부터 혼란스러운 이야기를 듣는다. 죽은 이를 디지털 기술로 살려내는 재현 시스템으로 언니를 복원했다는 것. 그리고 프로그램 속 제니를 업데이트하고 싶으니 언니에 대해 갖고 있는 기억과 자료를 제공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장 연출가는 “우린 자유롭기 위해 세상에 자신을 점점 더 최적화시켜야 하는 역설에 빠져 산다. 백신도 맞아야 하고 어딘가 항상 접속해 있어야 한다. AI 기술에도 적응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미래가 좋든 나쁘든 극을 통해서라도 마음의 준비는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작품에는 국가가 탄소배출을 막기 위해 개인의 데이터 사용량을 통제하는 단말기, 죽은 이를 가상으로 되살리는 민간회사 등의 SF 소재가 많다. 그는 “SF는 극을 담는 도구일 뿐이다. 정재승 교수에게 과학 얘기를 듣고 여러 세미나에서 발표하는 미래 전망을 보면서 상상하기를 즐긴다”고 말했다.

공상과학이 가득한 무대는 지극히 단순하다. 소품은 의자 두 개, 테이블 1개, 슬리퍼 한 켤레뿐. 좌우로 11m가량 길게 뻗은 무대는 공허해 보인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키기 위해 배우들은 멀리 떨어져 정면을 보고 대사를 뱉는다. 그는 “스펙터클을 완성하는 건 결국 배우다. 필요한 오브제만 신중하게 썼다”며 “환경, 탄소배출 문제도 언급하는 작품이기에 소품을 과하게 쓰지 않아야 한다는 책무도 있었다”고 했다.

넓은 무대는 소리와 영상이 채운다. 쌍둥이 자매를 혼자 소화하는 더블캐스팅의 조연희, 신정연 배우는 1인 2역을 위해 미리 일부 대사를 녹음했다. 장 연출가는 “자매가 대사를 주고받는 장면을 위해 극단 오퍼레이터는 녹음한 800여 개의 대사를 재생한다”고 설명했다. 무대를 가득 채운 정면의 스크린은 장면별로 등장인물의 얼굴을 확대해 비춘다. 그는 “차기작으로 청년세대의 우울증을 국가에서 관리하는 줄거리의 희곡을 집필 중이다. 스스로에게 한 번쯤은 질문했어야 하는 이야기를 쓰겠다”고 했다. 전석 3만 원, 15세 관람가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