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신뢰받는 지도자를 가졌나 ‘정의와 공정’이 뿌리내렸다고 믿는가 정치존립의 기반 ‘정의’가 사라져간다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
휴머니즘에는 유일하거나 절대적인, 정해진 목표가 없다. 더 많은 사람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해 항상 방향을 설정하며 최선의 방법을 모색해 간다. 그러나 구소련, 현재의 중국, 북한은 주어진 이념을 설정하고 그 이념을 위한 정치·경제의 방향과 방법을 따른다. 그 역사적 과정은 이미 결정되어진 것으로 받아들인다. 하나의 길과 방향이 주어져 있을 뿐이다. 마치 강물은 가능하다면 직선으로 바다로 가야 하듯이. 이런 이념주의를 신봉하고 따르면 휴머니즘의 정신에 위배되거나 역행하게 된다. 인간의 존엄성과 인격의 가치는 이념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바뀌고, 인권의 절대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는가. 모든 정치·경제 활동의 주체는 주권자다. 공산국가에서는 공산당의 지시에 따르는 정권이 정치의 절대 주체가 되고, 정치는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닌 정권을 위한 위치로 전락한다. 이념이 목적이기 때문에 국민의 자율성이나 의도는 설자리가 없어진다. 자유민주주의의 훈련을 받은 국민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우나 북한이 이미 그런 사회가 되었고 마오쩌둥과 현 중국 정권 지도자들도 같은 길을 택하고 있다. 홍콩이나 대만이 반(反)중국 운동을 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은 선택과 자율성을 상실하며 정권은 이념 달성을 위해 진실과 정의의 질서를 유린하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생각 있는 국민들은 우리가 선출한 대통령을 정치 지도자로 믿고 있는가. 정직과 진실이 과거보다 증대했다고 인정하는가. 천안함에서 아들을 조국에 바친 한 어머니가 대통령에게 물었다. ‘누구의 소행인가’라고. 그 물음은 아직도 남아 있다. 정부의 입장 이전에 대통령의 진심을 듣고 싶은 것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북의 김정은에게도 왜 그랬느냐고 물어야 한다. 대통령은 기념식 때마다 국민에게 많은 것을 언약한다. 그러나 그 결과와는 일치하지 못한다. 이런 불신은 국내적인 문제를 넘어 국제적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금, 청와대와 여당 책임자들이 정의와 공정을 위해 노력해 왔다고 믿는 국민이 있는가. 우리가 한 일은 모두가 정의이고 다른 정권이나 너희들이 한 일은 불의라는 자세에서 공정을 기대할 수 있는가. 상식은 버려지고 사익을 추구하는 정치인들이 정치 활동에 뛰어들어 나라가 혼란에 빠져 ‘유권(有權) 정의, 무권(無權) 불의’라는 개념이 통용되고 있다. 정치존립의 기반인 정의는 우리 시대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인권에 있다. 인권은 휴머니즘의 핵심이다. 유엔과 전 세계가 인권은 현재의 과제이면서 역사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믿는다. 그 인권 영역에서 완전히 버림받은 북한동포의 자유와 인간애가 보장되는 인권운동은 인류의 시급한 과제이며 우리 동포를 위한 절체절명의 의무이다. 그런데 그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얼마나 감당하고 있는가. 어떤 때는 북한정권을 위해 북한동포를 외면하는 상황을 보이고 있다. 이미 유엔과 자유세계의 기준으로는 한국이 인권을 존중시하는 선진국 대열에서 밀려난 지 오래다. 인권문제를 외면하면 민주주의는 설자리가 없어지며 휴머니즘의 가치와 존재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