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초등학생 강간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누명을 쓰고 15년을 복역한 고 정원섭 목사가 2011년 10월 대법원에서 재심 무죄 판결을 확정 받고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신광영 사회부 차장
“내가 죽으면 화장해서 남은 재를 강 말고 산에 뿌려줘라. 살인범의 더러운 흔적으로 강물을 오염시키고 싶지 않다.”
그는 누명을 벗어 유서를 고쳐 쓰고 싶었다. “더 살고 싶고, 더 살아야 한다. 아들에게 진실을 물려주고 죽어야 한다”는 말을 주변에 자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 씨의 재심 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2001년 “사건 후 29년이 흐른 뒤에 이뤄진 증인들의 진술 번복을 믿기 어렵다”며 재심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정 씨는 출소 후에도 달라진 게 없다고 느꼈다. 29년 전 그를 통닭구이처럼 거꾸로 매달아 코에 물을 들이부으며 거짓 자백을 강요한 경찰, 그에게 불리한 증언을 법정에서 바로잡으려던 증인을 위증죄로 구속한 검찰, “고문에 허위 자백했다”고 해도 1, 2, 3심 내리 무기징역을 선고했던 법원…. 그 때 그 모습대로였다.
법원은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권고를 받고서야 재심을 열었다. 고문에 의한 허위 자백이 인정돼 대법원이 정 씨에게 무죄를 확정했다. 국가배상 소송도 이어졌다. 2013년 1심 법원은 국가가 정 씨에게 26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정 씨가 40년 가까이 사회적 냉대를 당하고 가족들마저 그릇된 낙인으로 고통을 겪었다. 민주주의 법치국가에서 결코 일어나선 안 될 일”이라고 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심 법원이 국가에 배상책임이 없다고 판결을 뒤집었다. 과거사 사건은 형사보상 확정일로부터 6개월 내에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데 정 씨는 그보다 10일이 늦었다는 게 이유였다. 40년을 빼앗긴 사람에게 10일이 늦었다고 국가 책임을 면책한 것이다.
그래도 정 씨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헌법재판소가 2018년 ‘소멸시효 6개월’ 조항이 위헌이라고 결정한 게 불씨가 됐다. 헌재는 “국가기관의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에 일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한다는 헌법 원칙에 위배된다”고 했다.
하지만 헌재마저 “국가배상 책임이 없다는 법원 판결을 취소해달라”는 정 씨의 헌법소원을 지난해 기각했다. 대법원에서 이미 판결을 확정해버려 소급 적용이 불가하다는 것이었다.
평범한 30대 가장이었던 정 씨는 지난 49년간 국가로부터 고문 수사, 재심 거부, 배상 거부를 당했다. 한 시민의 소중한 삶을 대하는 우리 사법제도의 수준을 엿보게 된다. 정 씨 사건을 소재로 만든 영화가 ‘7번방의 선물’이다.
정 씨는 2018년 뇌경색이 재발해 기억이 흐릿해졌다. 그 와중에도 사건 관련 기억은 끝내 부여잡으며 “정의가 살아있는 한 국가에서 바로잡아 줄 것”이라고 아들에게 유언했다. 그는 3년간 요양병원에 머물다 지난달 28일 생을 마쳤다.
신광영 사회부 차장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