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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발 앞선’ 코로나 검사와 투표일 단상[즈위슬랏의 한국 블로그]

입력 | 2021-04-09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NK News 팟캐스트 호스트

3주 전 코로나19 검사를 받았다. 우리 직장에서 밀접 접촉자나 집단감염 사례가 발생했기 때문은 아니다. 나는 최근 해외를 방문한 것도 아니며, 감염자와 동선을 공유한 적도 없다. 오로지 내 여권이 대한민국 여권이 아니라서 받았다. 지난달 먼저 경기도에서 모든 외국인 노동자 대상 의무 진단검사 행정명령이 내려졌고 며칠 뒤 서울에서도 비슷한 행정명령이 내려왔다.

얼마 전 경기도의 여러 나라 외국인 노동자가 머무는 기숙사에서 집단감염 사례가 있었던 것이 원인이라고 한다. 그래서 갑자기 모든 외국사람이 의심스러워졌나 보다. 하긴 원래 그랬지 뭐. 한 15년 전에도 내 친구들 중 많은 외국인 원어민 강사 또는 학원 선생이 하루아침에 HIV(에이즈 바이러스) 음성 검사결과를 제출해야 한국에서 일할 수 있는 비자를 받거나 갱신할 수 있었다.

물론 그때도 그랬고 이번에도 나의 외국인 친구가 하소연했다. 나도 마음에 안 들었다. 바이러스는 사람의 여권 종류나 어느 민족 출신인지를 따지지 않고 누구에게나 전파된다. 한국인이 코로나19에 면역력을 타고난 것이 아닌 것처럼, 외국인도 이 바이러스에 취약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행정명령 과정에서 명확한 커뮤니케이션이 미흡했다. 서울에서는 행정명령이 먼저 기자회견으로 알려졌는데 공식적인 공고가 나오는 것은 꽤 늦었다. 공고 방식 또한 기존의 비상문자 체제도 아닌 서울시청 웹사이트에만 올렸는데 자세한 정보는 외국인들이 거의 사용하지 않는 파일 형식으로 올려져 있었다. 심지어 영어나 다른 언어로 번역된 안내는 아예 없었고 나같이 한국어를 읽을 수 있는 외국인들이 보고 이해한 뒤, 다른 외국인들에게 대충 번역해서 소문을 낼 수 있었다.

그 다음 날 여러 대사관, 그리고 주한상공회의소가 서울시청과 국가인권위원회에 외국인에 대한 차별적인 조치라고 호소했다. 인권위가 공개적으로 이 의견에 동의하면서 얼마 후 진단검사 의무화 행정명령은 철회됐고, 소위 ‘3밀’, 즉 밀접성, 밀집성, 밀폐성 있는 근무환경에 있는 고위험 사업장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만 검사를 권고하는 것으로 변경됐다. 같은 ‘3밀’ 고위험 사업장 한국인 노동자들도 이런 권고를 받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늦은 행정명령 철회였다. 행정명령의 번역문이 나온 다음에 확정된 소식이 퍼지고, 선별 진료소에 많은 외국인들이 몰려 줄이 길어질 것이 걱정되어 나는 재빨리 자발적으로 진료소에 가서 내 콧구멍 속에 그 지긋지긋하고 기다란 면봉을 찔러 넣는 검사를 받았다. 부지런한 행동에 대한 뿌듯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에 ‘음성’ 진단결과를 받기도 전에 진단검사 의무화가 취소된 것이다.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정부의 지침을 잘 따랐을 뿐인데…. 직장 동료는 ‘게으른 것이 좋을 때도 있다’며 나를 놀리기도 했다.

우리 외국 여권 소유자들은 대한민국 법에 따라 정치적 행동이 금지된다. 내가 알기로는 우리는 무슨 불평이 있거나 부당한 일을 겪더라도 시위를 하면 안 된다. 심지어 그 불평을 해결하거나 그 부당성을 바로잡으려고 하는 정치인 또는 정당을 지원해서도 안 된다. 거의 유일한 예외로는 영주권을 딴 사람이 지방선거에 투표할 권리를 받을 수 있는 정도다.

이번 주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있었다. 이번에는 결정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경쟁자들이 있었다. 특히 많은 여성 후보자가 나오고 여성의 권리를 증진시키고자 하는 공약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한 후보자는 소수자청을 세우려고 하고 서울이라는 공동체에 그동안 힘이 없었던 소수자를 위한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성소수자 그리고 장애인과 다문화가족 아이를 위하는 정책은 의미가 있지만 사실은 이 모든 것이 벌써 오래전에 이뤄졌어야 할 개혁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한국은 외국인들이 살기에 좋은 매력적인 나라로 변신해 가고 있다. 한국에 정착하고 싶은 외국인들이 기꺼이 소중한 한 표를 선사할 매력적인 정책을 펼칠 정치인이 있다면, 외국인이지만 내가 이 사회에 속한 구성원이라고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정치인이 있다면, 내 한 표를 기꺼이 주고 싶다. 그때까지는 아내가 권해주는 대로 투표를 해야겠지만 말이다.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NK News 팟캐스트 호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