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그제 당 세포비서대회 폐회사에서 “더욱 간고한 고난의 행군을 할 것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 어떤 우연적인 기회가 생길 것을 절대로 믿지 않는다. 그 어디에 기대를 걸거나 바라볼 것도 없다”고도 덧붙였다. ‘고난의 행군’은 1990년대 김일성 사망 이후 국제적인 봉쇄 조치와 자연재해가 겹쳐 북한에 수십만 명의 아사(餓死)자가 발생한 시기를 상징하는 말이다.
김정은의 이런 발언은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와 쉽게 대화에 나서지 않겠다는 압박 전술의 일환으로 보인다. 장기적인 고립도 마다하지 않겠으니 미국이 새 대북 정책에 양보안을 담으라는 요구인 셈이다.
앞서 백악관은 7일 “비핵화를 향한 길로 이어진다면 일정한 형태의 외교를 고려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비핵화란 목표를 ‘전제’로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는 제안이었다. 그런데 김정은은 30년 전 고난의 행군을 꺼냈다. 이것은 북한 주민의 극심한 고통, 더 나아가 대규모 아사 상황이 오더라도 핵을 절대 내놓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그러면서도 그는 “인민들에게 최대한의 물질·문화적 복리를 안겨주기 위하여”라는 수식으로 고난의 행군을 포장했다. 궤변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의 해묵은 압박 전술이 통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바이든 행정부에는 대북 사안에 잔뼈가 굵은 베테랑들이 포진해 있다. 여차하면 까다로운 북핵 문제를 후순위로 돌릴 수도 있다. 김정은이 핵을 쥔 채 고난의 행군을 강행한다면 미국의 양보를 얻어내기는커녕 북한 경제의 파탄이라는 최악의 상황에 빠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