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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정연욱]말만 앞선 성찰, 반성은 필요 없다

입력 | 2021-04-10 03:00:00

與, 보선 참패에 연일 사과와 반성 외쳐
근본적 정책·인적 쇄신 없으면 ‘쇼’일 뿐




정연욱 논설위원

잘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일찌감치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임을 인정했다. 2015년 3월 야당 대표 시절 군부대를 방문해 “북한 잠수정이 감쪽같이 들어와서 천안함을 타격한 후에 북한으로 복귀했다”고 말했다. 2012년 대선 때 ‘천안함 폭침’이란 용어를 사용하긴 했어도, 북한을 명확히 지목한 것은 처음이었다. 천안함 폭침을 ‘침몰’이라고 했던 참여연대 등 진보좌파 진영의 반발은 거셌다. 그만큼 당시 문 대통령의 ‘북한 소행’ 발언은 진영 내부에서 뜨거운 감자였다.

문재인 캠프는 진영의 울타리를 넘어 중원 표심을 잡기 위해선 중도 이미지를 부각시켜야 한다고 판단했다. 부정적인 종북(從北) 이미지를 불식시키는 것도 절실했다. 그래서 북한에 의한 천안함 폭침이라는 메시지도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서 천안함 사건은 홀대를 받았다. 오죽하면 천안함 유가족이 대통령 면전에서 “북한 소행이라고 말해 달라”고 따지는 일까지 벌어졌을까. 대통령직속 군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가 천안함 사건을 재조사하려던 일이 뒤늦게 들통나자 없던 일이 됐다. 대통령직속 기구에서 벌어진 일인데도 청와대는 “모르는 일”이라고 발을 뺐다. 아직도 이명박 정부의 천안함 폭침 발표에 부정적인 친문 지지층을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집권여당 소속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을 대하는 대응도 비슷했다. 여당이 사과하기는 했으나 마지못해 한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버젓이 5일간 서울특별시장(葬)을 강행했고, 여당 대표는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묻는 기자에게 ‘××자식’이라는 막말까지 했다.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으로 불렀던 여성 의원 3인방은 자숙하기는커녕 박영선 캠프의 전면에 나섰다. 도대체 보궐선거를 왜 하게 됐는지 개의치 않겠다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국민은 안중에 없고, 지지층의 박원순 향수에만 기대 보려는 몰염치였다.

재·보선 참패 후 여당을 추스를 비상대책위원장에 도종환 의원이 지명됐다. 도 의원은 친문 사조직으로 불린 부엉이 모임의 시즌2 ‘민주주의4.0 연구원’의 이사장을 맡은 친문 핵심이다. 당 일각에서 “국민을 졸(卒)로 보나” “이게 쇄신이냐”는 비판이 나왔다. 그러나 그동안 결이 다른 목소리는 용납하지 않았던 친문 일색 정당에선 애초에 신선한 비대위원장 인선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을 것이다.

정부 여당은 1년 전 총선 압승 직후 오만을 경계하자고 했지만 실제 행동은 오만의 극치를 달렸다. 국회 인사청문회는 껍데기만 남았고, 입법 폭주는 일상사가 됐으니 야당과의 협치는 죽어버린 사어(死語) 수준으로 전락했다. 공정과 정의 구호는 조국, 윤미향 사태를 거치면서 ‘내로남불’의 상징이 됐다. 선관위가 ‘내로남불’ ‘위선’ 표현은 특정 정당을 연상케 한다고 사용 중지할 정도 아닌가.

이제 대통령선거는 1년도 채 남지 않았다. 정권심판론이 크게 작동하는 대선 직전 선거 판세는 대개 집권 세력에 불리했다. 그러나 반전의 계기는 있었다. 이명박 정권은 2011년 서울시장 보선 패배를 국정기조 전환에 나선 박근혜 비대위로 돌파했다. 반면 2016년 총선 패배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한 박근혜 정부는 탄핵을 맞았다. 말로만 하는 사과나 성찰은 필요 없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근본적 쇄신을 못 하면 또 하나의 정치 쇼로 비칠 뿐이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