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실정에 ‘벼락거지’ 내몰린 세대 ‘이남자’ 분노, 젠더 갈등 치부 말아야 20대 경험치는 60년 갈 정치 DNA
천광암 논설실장
이번 4·7 보선의 최대 이변으로는 20대 남자(만 18세 이상 포함)가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에게 몰표를 던진 것이 꼽힌다. 하지만 이들의 분노 투표는 선거 과정에서 충분히 예견됐던 일이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20대의 “역사적 경험치”를 거론하면서 설훈 민주당 의원 등 여권 인사들의 20대 비하 발언들도 줄줄이 소환됐다. 친여 성향의 한 시인은 “돌대가리”라는 막말까지 쏟아내며 성난 표심에 기름을 부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겠지만 그래도 72.5(오세훈) 대 22.2(박영선)의 격차는 충격이 너무 컸던 모양이다. 강경론이 판치는 친문 커뮤니티에서도 20대 남자와의 소통 부족에 대한 진지한 자성론이 나온다. 이대로 가다가는 1년 뒤 대통령 선거가 위험하다는 계산 때문일 것이다. 20대 남자들의 분노 투표에 대한 원인 분석과 응급처방 아이디어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유 이사장은 당시 “젠더 이슈”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욕망이 욕망을 제어하는 시스템이다. 옳은 것이 이기는 게임이 아니다. 20대 남녀 간의 지지율 격차는 문 대통령이 여성 장관 할당제 같은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일이고 그로 인해 불이익을 본다고 생각하는 20대 남자의 지지율이 떨어진다면 그냥 감수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이었다.
보선 이후 갑론을박이 한창인 친문 커뮤니티 일각에서는 심지어 20대 남자의 지지를 얻기 위해 페미니즘 정책을 ‘손절’해야 한다는 황당한 주장까지 나온다. 이번 보선은 민주당 소속 서울·부산시장의 성폭력으로 인해 치러진 선거다. 이들의 성추행 사실이 밝혀진 뒤에도 민주당의 유력 정치인들이 박원순 재평가론 등을 띄우며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멈추지 않았다. 이런 일련의 사태를 보면 유 이사장이 말한 페미니즘이 애초부터 여당 안에 있기나 했는지 의문이다.
20대 남자 대 20대 여자. 매사 이런 식으로 편을 갈라 보면 정작 중요한 본질을 놓치게 된다. 2018년 말 한국갤럽 조사에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에 대한 20대 여성의 지지율은 겨우 1%였다. 그런데 이번 서울시장 보선에서는 40.9%가 오세훈 후보에게 표를 줬다. 야당이 잘해서가 아니다. 여당이 잘못해서다.
이번 4·7 보선에서 나타난 20대 남녀의 표심은 문 정권의 지난 4년 경험치, 즉 무능 위선 내로남불의 결과물이다. 정권의 무능에 20대는 미래를 빼앗겼다. 현 정권은 어설픈 소득주도성장론을 앞세워 알바 일자리의 씨를 말렸고, 25전 25패의 부동산대책으로 평생 넘을 수 없는 집값 장벽을 세웠다. 직장이 있는 30대는 ‘영끌’이라도 해보지만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취업난에 처해 있는 20대는 한 세대 전체가 ‘벼락거지’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대 남녀의 표차를 놓고 세대 내 갈등에서 원인을 찾아서는 안 된다. 취업이나 주거 같은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면 세대 내의 견해 차이는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다. 이 글의 서두에 말한 겔먼 등의 분석을 한국에도 적용할 수 있다면, 20대의 문 정권 4년 경험치는 이들의 투표 DNA 안에 깊숙이 각인돼 앞으로 두고두고 영향을 끼칠 것이다. 20대는 최소한 앞으로 60년은 투표장을 찾을 세대다. 여권이 어느 세대보다 20대를 두려워해야 하는 이유다.
천광암 논설실장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