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아티스트 비플의 ‘매일: 첫 5000일’은 복제 불가능한 ‘디지털 소유 및 거래 증명서’에 해당하는 ‘NFT’(대체불가능한 토큰) 기술 형태를 선보였다. AP 뉴시스
정우성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 교수
이번 경매에 등장한 작품은 다른 그림 파일과는 다른 기술이 적용됐다.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NFT(Non-Fungible Token·대체불가능한 토큰)’가 활용되었다. 다른 작품과 달리 ‘디지털 소유 및 거래 증명서’라 할 수 있는 NFT 형태로 경매에 나왔다. 즉 그림 파일은 앞으로 복제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증명서를 바탕으로 누가 작품을 소유하고 있는지 확인 가능하다. 작품이 정당한 방법으로 거래된 것인지, 혹은 불법으로 복제된 것인지도 알 수 있다. NFT 증명서가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조작할 수 없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다.
복제와의 전쟁은 오래되었다. 일상생활과 가장 가까운 복제 범죄는 위조지폐이다. 지폐의 복제를 막기 위한 다양한 기술이 적용된다. 보는 각도에 따라 보이는 무늬가 달라지는 특수필름을 넣거나, 복사하면 색깔이 변하는 기술을 넣기도 한다. 일반인들이 위조지폐를 쉽게 확인하기 위해, 밝은 곳에 비춰보면 숨어있던 인물의 초상이 나타나는 ‘숨은 그림(워터마크)’을 넣어둔다. 금융기관 등 전문적인 취급자만이 알고 있는 방지장치도 있다.
5만 원권의 빨간색 점선 안에는 띠 모양 홀로그램과 빛에 비춰야 나타나는 은선 등 각종 복제방지 장치들이 있다. 동아일보DB
그간 유명화가의 작품이 진품인지를 판별하려면, 전문가의 눈으로 작가의 고유한 붓 터치나 그림에 적힌 작가의 필체를 살피곤 했다. 최근에는 과학적 방법이 동원되어, 작품에 사용된 물감의 성분을 분석하거나 종이의 표면을 현미경으로 관찰한다. 병원에서 볼 수 있던 X선 촬영도 동원된다. 이제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기술인 NFT가 경매시장의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번에 판매된 그림은 작가가 5000일 동안 매일 디지털 아트 작품을 만들었고, 이를 하나의 파일로 만든 것이다. 어찌 보면 단순한 그림인데, 첫 NFT 경매라는 희소성을 갖고 있다. 이후 NFT를 활용한 예술품의 경매가 이어지고 있다.
진품을 소장한다는 것은 남들과 차별화된 가치를 사는 것이다. 이 경우 누구나 인정하는 객관적인 가격이란 없다. 명품을 판매하고 사는 시장의 심리이다. 미술작품에만 NFT 기술이 적용되지 않는다. 컴퓨터 게임에서 이루어지는 거래에도 쓰인다. 프로스포츠 선수들의 선수카드가 NFT 형태로 등장하고, 만화가의 스케치도 판매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주식의 발행 확인을 NFT로 보증하는 회사도 등장했다. NFT가 복제를 완전히 막지 못한다. 이는 소유와 거래의 기록이 담긴 위조불가능한 보증서이다.
그간 다른 예술작품과 달리 디지털 작품은 복제 우려 때문에 활발한 거래가 없었고, 작가의 노력이 평가받기 어려웠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으로 관련 시장이 활성화되리라는 기대가 있다. 이와 함께 암호화폐와 마찬가지로 실체에 비해 거품이 낀 가격으로 시장을 왜곡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활발한 거래는 검은돈 세탁에 악용될 거라는 지적도 있다. 특히 NFT 거래 시장 참여자 대부분이 가명으로 거래를 하기에 사기꾼의 앞마당이 될 가능성도 있다.
정우성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