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아영 문학평론가
도쿄의 관청에서 근무하는 소스케는 아내 오요네와 함께 아이 없이 살면서 넉넉하지는 않지만 소소한 일상을 꾸리고 있다. 잔잔한 물결처럼 평화로워 보이는 두 사람의 일상은 그 무엇에도 적극적이지 않고 어떠한 욕구도 회피해버리고 마는 소스케의 내면에서 비롯한다. 유산과 남동생의 학비 때문에 숙부와 갈등을 겪고 있지만, 소스케는 일처리를 한없이 미루기만 한다. 물려받은 병풍을 고물상에게 한참 밑지고 팔아도, 남동생이 자신을 무시하는 듯 불만을 내비쳐도, 소스케는 자기에게 주어진 마땅한 인생이라는 듯 가만히 곱씹을 뿐 어떤 형태로도 괴롭거나 불편한 감정을 표출하지 않는다. 소설의 후반부에서야 비로소 밝혀지는 “과거로부터 질질 끌고 온 운명” 때문에 어둡고 깊은 구렁텅이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해야 할 일은 끝없이 연기되며, 매듭지어지는 사건은 없다. 이 소설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문장인 “두드려도 소용없다. 혼자 열고 들어오너라”라는 목소리 앞에서 소스케는 무력하게 무릎을 꿇은 채로 끝나는지도 모른다. 참선하기 위해 들어간 가마쿠라의 절에서도 그는 답을 구하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온다. 카프카의 ‘성’(1926년)에서 성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마다 수화기에서 “언제라도 절대 들어올 수 없어”라는 대답을 들어야 했던 이방인 K처럼 말이다. 소스케가 도저히 열고 들어갈 수 없다고 생각했던 그 문은 무엇이었을까.
인아영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