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사진)은 대선 슬로건으로 ‘더 나은 재건’을 앞세웠습니다. 탄소중립이라는 환경 목표로 미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의지를 담았습니다. 이 계획의 핵심은 ‘미래 전기차와 배터리를 미국에서 미국 노동자들이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계획이 틀어질 만한 걸림돌이 생겼습니다. 테슬라, GM 등 미국 전기차 회사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업체 사이의 갈등이 지속된 겁니다. 갈등 당사자는 한국의 2차전지 업체인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입니다. 2차전지 산업은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3국이 전 세계 생산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CATL과 한국의 LG에너지솔루션이 1, 2위를 다투고, SK이노베이션이 삼성SDI와 함께 글로벌 4, 5위 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있습니다.
LG와 SK는 2019년부터 2년 동안 기술특허와 영업비밀 침해 등이 얽힌 소송을 진행했습니다. 올 2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SK가 LG의 배터리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 결정이 확정되면 SK는 미국에 10년 동안 배터리를 납품할 수 없게 됩니다. LG는 SK에 3조 원의 합의금을 요구했고, SK는 1조 원 이상 줄 수는 없다고 맞섰습니다. SK는 바이든 대통령이 ITC 결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미국 내 배터리 사업에서 철수하겠다는 ‘배수진’을 쳤습니다.
다행히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시한(현지 시간 11일) 직전, 세기의 배터리 분쟁이 타결됐습니다. 이번 합의에 따라 SK는 LG에 영업비밀 침해에 따른 합의금으로 2조 원을 물어주기로 했습니다. 현금 1조 원에 로열티(기술사용료) 1조 원을 지급하는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더불어 2019년 이후 국내외에서 양사가 진행 중인 특허침해 소송 등 모든 기술 분쟁을 완전히 종결하기로 했습니다. 향후 10년간 법적 분쟁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번 합의로 LG는 배터리 기술력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SK는 배터리 사업의 불확실성을 제거했습니다. 한국이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합의를 ‘미국 노동자와 자동차 산업의 승리’라고 밝혔습니다. 사실은 진퇴양난(進退兩難)의 난감한 상황을 벗어난 바이든 자신의 승리이기도 할 것입니다. 일자리 창출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전기차 공급망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해온 바이든 대통령이 지식재산권 분쟁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했으니 말입니다.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