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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동적인 바로크 패션[간호섭의 패션 談談]〈52〉

입력 | 2021-04-14 03:00:00

하이힐을 신은 남자




이아생트 리고 ‘루이 14세의 초상’, 1701년.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바로크는 프랑스어로는 Baroque, 이탈리아어로는 Barocco, 독일어로는 Barock로 르네상스 이후 17, 18세기 서양의 미술, 음악, 건축 그리고 패션에서 나타난 예술사조입니다. 가구 브랜드 혹은 교회음악을 떠올릴 정도로 익숙한 용어입니다. ‘일그러진 진주’를 뜻하는 포르투갈어 ‘p´erolas barrocas’에서 기원했다는 설이 지배적이지만, 삼단논법이나 불협화음으로 인한 소리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바로크는 르네상스 시대의 균형적이고 이상적인 아름다움의 표현보다는 격정적이고 역동적인 형태, 빛과 어둠의 대비로 표현되는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공들여 다듬은 진주보다 가공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진주가 색다른 형태와 광채를 머금고 있듯이 말이죠.

이런 역동성은 당시 유럽 정세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독일에서 시작된 30년 전쟁(1618∼1648) 이후 근대적인 외교관계가 수립되었습니다. 1620년까지는 스페인 귀족 패션이 유행했으나, 네덜란드 시민세력이 부상한 뒤에는 프로테스탄트 사상인 검약정신이 반영된 소박한 블랙 패션이 패션의 중심축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프랑스 국왕인 루이 14세가 네덜란드와 전쟁을 치르고 유럽의 중심에 서면서 네덜란드 패션은 점차 사라졌습니다. 이때부터 프랑스는 광활한 국토와 생산성 높은 인구, 재정 확충으로 큰 발전을 이룹니다. 루이 14세는 베르사유 궁전에서 장엄하고 화려한 축제와 무도회, 연극 등을 주최하며 절대왕정을 확립했습니다. 혹시나 왕에게 초청받지 못할까 봐 안달하던 귀족들의 파티는 바로크 패션의 각축장이었고 너도나도 루이 14세의 패션을 추종했습니다.

‘일그러진 진주’라는 어원처럼 바로크 패션은 생동감을 주지만 보기에 따라 유치할 수도, 장엄하지만 경박스러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전성기 바로크 패션은 일그러진 진주와 같은 완만한 곡선과 파도가 치는 듯한 자유로운 파상선을 의상의 실루엣이나 주름 장식에 많이 사용하였죠. 장식으로는 커다란 술 장식인 태슬(tassel)과 줄을 꼬아서 만든 루프(loop) 그리고 자수(embroidery)와 레이스(Lace) 등으로 바로크 패션의 독특함을 표현했습니다.

루이 14세 절대왕정의 궁정문화와 패션은 왕족과 귀족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유럽 다른 나라 왕들에게까지 큰 영향을 주게 됩니다. 루이 14세는 트렌드 리더이자 패션 리더였습니다. 일곱 살 때부터 20여 년간 매일 춤 연습을 했다는 그는 직접 무대에 올라 1만5000명의 관객 앞에 섰던 예술가였고, 예술로 귀족들을 통치했던 전략가이기도 했습니다. 단신이던 루이 14세가 하이힐을 신어 자존감을 세웠다고도 하지만, 실제로는 바로크의 예술사조와 바로크 패션의 기묘함이 하이힐의 원조를 여자가 아닌 남자로 기억하게 만든 게 아닐까요.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