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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Z 이어 얀센도 혈전 논란… 백신 접종, 정말 이익이 더 클까?

입력 | 2021-04-14 11:52:00

[코로날리지(Corona+Knowledge)] <5>




“이거 원, 무서워서 백신 맞겠나.”

의료계에 있는 가까운 지인은 14일 오전 한숨을 쉬었다. 정부 계획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치료 의료진뿐 아니라 일반 보건의료인들도 4월 중순부터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한다. 접종 백신은 아스트라제네카다. 최근 유럽에서 아스트라제네카를 맞은 사람들 가운데 희귀 혈전이 발생한 사례가 발견됐는데, 13일 얀센의 백신 접종 사례에서도 같은 혈전이 나왔다니 불안함을 토로한 것이다.

이날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공동성명을 내고 “얀센 백신을 투여한 사람에게서 희귀하고 심각한 혈전 사례 6건이 보고돼 관련 데이터를 검토 중”이라며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백신 접종 중단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앞서 7일 유럽의약품청(EMA)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해 “백신과 희귀 혈전 사이에 인과관계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영국 국가예방접종위원회(JCVI)는 같은 날 30세 미만 성인에 대해 “가능하면 아스트라제네카가 아닌 다른 백신을 접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고했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WHO)와 EMA는 모두 백신 접종으로 얻는 이익이 크다며 여전히 접종은 계속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우리 정부도 12일부터 30세 미만을 제외한 우선 접종 대상자의 접종을 재개했다.

11일 충북 청주시 질병관리청 건물에서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질병관리청장)이 7일 잠정 중단됐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을 재개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국민들은 혼란스러울 따름이다. 혈전 문제가 연이어 터지는데, 위험성이 있을 수 있다면서 30세 이상은 접종?


●핏덩어리 ‘혈전’, 원래 고령일수록 많아
혈전(血栓)이란 말 그대로 ‘핏덩어리’다. ‘피떡’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혈전은 지혈과정에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나상훈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11일 “혈전은 원래 (지혈을 하는) 좋은 것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과유불급(過猶不及)이듯, 혈전도 어떠한 이유로 체내에 과하게 생기면 해가 된다. 나 교수는 “포도당이 원래 우리 몸에 굉장히 중요하지만 너무 많으면 당뇨병이란 위험이 생긴다”며 “혈전도 (너무 많이 생기면) 임상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했다.

혈전증의 정의와 혈전으로 인한 대표적인 질환

‘문제적 혈전’이 생기는 원인은 흔히 다음과 같다. △어떤 이유로든 혈액의 흐름이 느려지거나 △혈관에 손상이 발생하거나 △혈액 응고를 일으킬 수 있는 응고제 같은 물질이 투입되는 경우다. 보통 이런 상황은 나이 들수록 발생 확률이 높아진다. 따라서 혈전도 일반적으로는 어르신들에게 더 많이 발생한다.


●희귀 혈전, “젊은층 다수…20년간 거의 못 본 특이 부위”
하지만 이번에 아스트라제네카 백신(그리고 아마도 얀센 백신)을 접종한 사람들에게 나타난 혈전은 젊은 사람들에게 더 많이 발생했다. 7일 유럽의약품청은 아스트라제네카 접종 후 발생한 혈전 사례 조사 결과 “지금까지 보고된 사례 대부분은 예방접종 후 2주 이내 60세 미만 여성에게서 발생했다”고 밝혔다.

2월 26일 한 요양병원에서 젊은 여성 종사자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을 받고 있다.


게다가 발생 장소도 특이하다. 보통 혈관손상으로 많이 발생하는 동맥혈전은 물론 혈류정체로 발생하는 정맥혈전도 잘 발생하는 부위가 있다. 하지만 이번에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 후 발생한 혈전 부위는 뇌정맥동(CVST), 내장정맥 등 생소한 부위다. 얀센 백신 혈전 역시 뇌정맥동에서 발견됐다고 미국 보건당국은 밝혔다.

한국혈전지혈학회 감사를 맡고 있는 김양기 순천향대서울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내가 20년간 본 혈전 환자 가운데 정맥혈전 환자만 3000명이 넘는데, 그 중 (뇌정맥동, 내장정맥 혈전 환자는) 20명이 채 안된다. 그 정도로 발병 확률이 낮은 부위”라고 말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도 11일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 브리핑에서 “국내에서 이 희귀 혈전증의 평상 시 발생 빈도는 100만 명당 1명으로 추정되어 매우 드물게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더구나 이번에 백신 부작용으로 나타낸 혈전은 ‘혈소판감소증’을 동반하는 특징까지 갖고 있다. 혈소판은 혈액의 응고에 관여하는 혈액의 한 성분이다. 혈전이 생기는데 혈전을 만드는 혈소판 성분은 줄어드는 역설적인 현상이 동시에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래저래 무척 희귀한 혈전인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아스트라제네카를 접종한 사람 가운데 20대 남성에게서 뇌정맥동 혈전이 발견됐다. 하지만 혈소판감소증이 나타나지 않아 백신 부작용으로는 분류되지 않았다. 나 교수는 11일 방대본 브리핑에서 “기사를 보면 혈소판감소증이 동반됐다는 용어를 쓰지 않고 그냥 혈전이라고만 써서 국민 분들이 이해하기 굉장히 어려울 수 있다”며 “실제 문건에서 명확하게 ‘혈소판감소증이 동반될 경우에만 위험하다’고 돼있다”고 강조했다.


●유럽 학자들, “과한 면역반응이 혈소판 이상 초래”
안타깝게도 이 혈전의 정확한 발병원인은 미궁 속에 있다.

하지만 유럽 일부 학자들은 ‘백신이 과도한 면역반응을 일으켜 혈전을 발생시킨 게 아닐까’ 추정한다. 독일의 혈액학 권위자인 그라이프스발트 의대 안드레이스 그라이나셔 교수는 지난달 발표한 논문을 통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엉뚱하게 혈소판에 면역반응을 일으키면서 혈전을 유발하고, 동시에 혈소판 감소를 일으킨 것이라 주장했다. 백신이 바이러스 항체만 만들어야 하는데 혈소판에 영향을 미치는 항체까지 만들어 문제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한스 클루지 WHO 유럽국장이 이달 7일 루마니아의 한 예방접종센터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과 관련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출처 AP뉴시스

EMA도 7일 발표에서 비슷한 견해를 내놨다. 이번 혈전증이 ‘헤파린 유도 저혈소판증(HIT)’과 유사한 양상이라는 것이다. 해파리? 아니고 헤파린은 혈액응고를 막기 위해 처방하는 약의 이름이다. HIT란 혈소판이 이 헤파린이란 약에 과민반응을 일으키면서 혈전을 만들고 동시에 혈소판은 줄어들게 하는 현상을 뜻한다. 쉽게 말해 헤파린이 혈소판에 과민반응을 일으키면서 나타나는 부작용이 HIT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역시 이 HIT처럼 혈소판에 과민반응을 일으켜 이상을 유발한 게 아니냐는 게 EMA가 7일 조심스레 밝힌 견해다. 미국 보건당국도 13일 발표에서 “헤파린 투여는 위험할 수 있다”며 경고했다.


●발병 확률? “화이자 맞고 아나필락시스 겪을 확률과 비슷”
그렇다면 백신을 맞았을 때 이 희귀 혈전이 발생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말 그대로 희박하다는 게 다수 전문가들의 말이다.

일단 뇌정맥동, 내장정맥에 혈전이 생길 확률 자체가 무척 낮다. 7일 EMA에 따르면 지난달 22일까지 유럽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을 받은 2500만 명 가운데 62명에게서 뇌정맥동, 24명에게서 내장정맥 혈전이 발생했다. 비율로 따지면 100만 명당 3.4명꼴이다. 영국에서도 지난달 31일까지 2200만 명이 접종했는데 79명의 관련 환자가 발생했다고 의약품건강관리제품규제청(MHRA)이 이달 7일 밝혔다. 100만 명당 3.6명으로 EMA가 밝힌 발병률과 비슷하다. 얀센 백신 혈전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 보건당국 발표에 따르면 680만 회 이상의 접종이 진행된 가운데 6건의 혈전 사례가 발견됐다. 비율이 워낙 낮다 보니 사실상 자연발병률과 동일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백신을 맞으나 안 맞으나’ 발병률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아나필락시스 쇼크(백신 접종 후 전신급성반응)의 발병 확률이 100만 건당 2~5건”이라며 “희귀 혈전 발생 확률과 거의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는 “아스트라제네카 맞고 혈전이 생길까봐 불안하다면 화이자 맞고 아나필락시스 쇼크가 올까봐 똑같이 걱정해야 맞다”며 부작용 우려를 일축했다.

아스트라제네카사(社)의 코로나19 백신

더구나 우리나라의 경우 일반적으로 혈전 발생률이 서구에 비해 낮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정재훈 가천대길병원 예방의학과 교수는 11일 방대본 브리핑에서 “(백신에 의한 것이 아닌 일반적인) 희귀 혈전 발생률은 우리나라에서는 약 100만 명당 1.3명 정도로 추정되지만 유럽에서는 6.5명 수준으로 국내보다 5배 정도 높다”고 설명했다. 한국혈전지혈학회 학술이사인 장성수 서울아산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도 “일반적으로도 코카시안(caucasian·백인) 혈전 발생률이 아시아인보다 높은 편이다. 백인에 비하면 아시아인의 혈전 발생률은 3분의 1에서 5분의 1 정도로 낮다”고 말했다.


●영국·유럽, “피임약 영향”이란 분석도
일부 전문가들은 영국 등 유럽에서 젊은 여성에게 혈전이 많이 나타난 것이 피임약의 영향이라 분석하기도 한다. 김양기 교수는 “유럽, 영국 등 서구 국가에서는 여성의 피임약 복용이 보편화돼있다”며 “호르몬제를 복용하거나 임신을 하는 경우 호르몬에 변화가 생기면서 혈전 발생률이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여성들의 피임약 이용률이 높지 않다. 약을 접하는 시기도 상대적으로 늦은 편이다.

김 교수는 “국내에서도 연구 결과 호르몬제 복용을 한 사람들은 희귀 혈전 생성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영국에서 30세 미만 접종 제한을 권고한 것도 자국의 (피임약이 일상화된) 사회적 분위기에 근거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실제 영국 MHRA는 7일 발표에서 ‘임신한 여성의 경우 호르몬 변화로 혈전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접종 시 전문가와 상의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한편 희귀 혈전 환자 가운데 여성이 많은 것 역시 단순히 접종자 가운데 여성이 많기 때문이란 분석이 있다. 조은희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 접종후관리반장은 8일 본보와 통화에서 “영국은 물론이고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여성 접종자가 많은 편”이라며 “우선 접종 대상자 가운데 간호직 등 여성 종사자들이 많고 일반적으로도 여성들의 예방 접종률이 높다”고 말했다. 영국에서도 희귀 혈전이 발생한 환자 79명 중 51명이 여성이었지만 MHRA는 7일 이를 두고 ‘여성 접종률이 높다는 것을 반드시 감안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접종제한…“30세 미만 이득 ‘불분명’”

아스트라제네카 바이알 추출 모습(사설=지난 달 국내 한 병원에서 간호사가 아스트라제네카 바이알(유리병)에 담긴 백신을 주사기로 추출하는 모습.

정리해보면 희귀 혈전은 발병 가능성도 낮고 호르몬제 등 다른 약물의 영향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정을 모를 리 없는 우리 정부와 해외 여러 국가들은 아스트라제네카와 얀센 백신 접종을 제한하거나 중단한 걸까?

먼저 다른 나라의 경우 대안이 있기 때문이다. 영국 MHRA는 7일 발표에서 ‘현재 영국에는 아스트라제네카의 대안으로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이 있다’며 ‘30세 미만 성인에게는 가능하면 이들 대체 백신을 접종하라’고 했다. 미국 백악관도 14일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이 충분해 얀센 백신 접종이 중단되더라도 하루 300만 회 접종 속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300만 회라니…우린 고작 하루 3~4만회인데!). 다른 백신이 있는데 굳이 문제가 제기된 백신을 (희박하나마) 위험 가능성이 있는 연령에 접종할 필요가 없는 셈이다.

반면 우리는 대안이 많지 않다. 국내에 도입된 백신이라 해봐야 수백만 명분의 아스트라제네카, 화이자 백신이 전부다.

정부는 일단 백신 접종의 이득이 다른 연령에 비해 명확치 않은 30세 미만만 아스트라제네카 접종을 제한하기로 했다. 20대는 코로나19로 사망할 가능성이 극히 낮기 때문에 혈전으로 인한 위험 가능성과 비교할 때 접종 이득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얀센은 아직 국내 도입 전이기 때문에 해외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1차 접종만으로 92.2% 효능이라는데…그만한 동의율 이끌까?
하지만 정부의 설명과 무관하게 백신에 대한 불안은 일파만파 번지고 있는 상태다. 이번 희귀 혈전은 젊은층에 발병할 가능성이 높은데도 “접종 안 받으련다”고 손사래 치는 고령층도 적지 않아졌다.

정부는 접종 재개와 함께 이상반응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혈전과 관련한 안내문, 진료안내서 등을 보강해 배포하기로 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효능이 1차 접종만으로도 92.2%(접종 2주 이후 조사 결과)에 이르렀다며 거듭 접종도 당부했다. 하지만 이것으로 이미 사람들 머릿속에 깊이 각인된 ‘백신=혈전’이라는 불신을 걷어낼 수 있을까.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