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폴 카버 영국 출신·유튜버
나도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문화를 파악하고 적응하기 전까지는 소주잔을 한 손으로만 들거나, 삽겹살을 굽지 않고 받아먹기만 하거나, 목을 뻣뻣하게 세우고 손만 흔들어 상사에게 인사하는 실수를 부지기수로 했었다.
조금 우스운 예를 들자면, 특정 행동이 어떤 사회를 막론하고 비사회적으로 인식됨에도 불구하고 신체적 불가항력 때문에 용인되기도 한다. 차마 입에 담기 민망하지만 많은 분이 공공장소에서 실수하고 놀림을 당한 경험이 있을 것이라고 감히 생각한다. 물론 나 스스로는 절대 그런 실수를 한 적이 없기는 하지만 말이다.
다른 면에서 나도 최근에 실수를 한 적이 있다. 여기에 소개하려는 일화는, 문화를 막론하고 시대에 따라서도 사회성에 대한 정의가 변할 수 있다는 것의 예시가 될 것 같다. 작년 초까지만 해도 별문제가 없었겠지만, 이제는 코로나19가 사회적 행동에 대한 적절성 평가 기준에도 변화를 가져왔으니 씁쓸하다. 코로나가 사회 구성원 사이에서 합의되는 민망, 불쾌, 혐오감의 정의조차 바꾸는 지점에 온 것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괜찮은 것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불쾌, 원망, 심지어는 항의까지 들어야 할 일도 생겼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마스크를 당당히 쓴 나와 내 친구가 카페로 들어가 커피와 케이크를 하나씩 주문했다. 나는 티라미수를 시켰다. 커피 원액에 적신 케이크 위에 마스카르포네 크림치즈를 얹고 그 위에 코코아 가루가 뿌려진 기가 막히게 맛있는, 내가 좋아하는 디저트다. 그런데 이 코코아 가루가 이렇게 치명적일 줄 그날 이전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아름답고 맛있는 것은 먼발치에서만 감상하고 감사해야 하는 것일까.
이 맛있고 아름다운 티라미수를 너무 가까이서 자세히 쳐다보다 코코아 가루가 코로 들어가 기도로 내려가는 바람에 발작적으로 기침을 해대기 시작했다. 자기가 시킨 레몬 케이크를 한 입 베어 먹기도 전에 당황스러운 상황에 몰린 내 친구는 물론이거니와 주변 사람들도 일제히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았다. 기침을 참으려 하면 할수록 더 심해져 화장실로 황급히 도망가야 했다. 내가 세상을 오염시키러 나온 무책임한 불한당 취급을 받을 것 같다는 공포심밖에 들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꽃가루가 흩날리는 봄이 찾아왔으니 꽃 알레르기로 고생하는 나는 이제 시도 때도 없이 재채기를 해댈 것이고 주변의 시선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차라리 신체적 불가항력으로 인한 후·청각적 혐오를 견디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가득하다.
폴 카버 영국 출신·유튜버